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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름부음

다시 부는 바람 - 인공지능(AI) 시대, 교회가 예언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7. 10.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린도전서 14:1,5,39)

2023년 무렵, 세상은 챗봇 하나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대화형 인공지능은 이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도구를 넘나들며,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다음 할 일을 판단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이메일에 답장하고, 회의 일정을 조율하는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 처리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이십 년간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IT 산업의 성장 동력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자체였다면, 이제 다가오는 시대의 동력은 그 기기 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능'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다시 한번 거대한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변화는 교회가 서 있는 자리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난 세대 한국 교회를 성장시켰던 두 엔진이었던 성경공부 중심의 제자훈련과 뜨거운 경배 찬양이 힘을 잃어가는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정보와 지식은 이제 기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하는 시대에, 교회는 무엇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인공지능(AI) 이라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이토록 불안한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같은 질문들입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조합해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문장 뒤에 살아있는 임재는 없습니다. 정보는 줄 수 있어도 임재는 줄 수 없는 것이 인공지능이 넘지 못하는 마지막 벽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 선지자 요엘을 통해 다가올 시대의 진짜 동력이 무엇인지 예고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 2:28~30) 정보는 기계가 줄 수 있지만, 영은 오직 하나님만이 부어주실 수 있습니다.

'연기 기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구름 기둥을 가리키며, 히브리어 '아난'(anan)에는 '예언하다'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순절에 '불'이 임하여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었다면, 이제 이 시대에는 '구름'이 임하여 예언의 문이 열립니다.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없는 이 살아있는 음성이야말로, AI 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답변입니다.

몇 해 전, 한 자율주행 자동차 회사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도로에 내보냈다가 사고를 낸 일이 있었습니다. 기술 자체는 놀라웠지만, 그 기술을 안전하게 통제할 체계가 미비했던 것입니다. 강력한 힘일수록, 그것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이 됩니다.

예언도 이와 같습니다. 예언은 교회의 '꽃'이라 할 만큼 아름답고 강력한 은사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교회가 무작정 받아들이면 혼란과 상처만 남깁니다. 초대 교부들과 종교개혁자 루터가 예언에 신중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아직 미숙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릅니다. 마치 오랜 시험 주행과 데이터 축적을 거친 자율주행 기술이 비로소 도로에 나설 준비를 갖추듯, 우리 사회는 이미 고학력 사회로 진입했고 성도들은 오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통해 말씀의 기초를 튼튼히 쌓아왔습니다. 신유와 축사에 대한 이해, 최근 활발해진 '속사람 치유' 사역까지 더해지면서, 이제 교회는 예언이라는 강력한 은사를 안전하게 감당할 만한 위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인공지능(AI 에이전트)의 핵심은 '초개인화'입니다. 나의 취향, 일정, 습관을 학습해서 나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그 개인화는 결국 데이터의 축적일 뿐, 나라는 존재를 진정으로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반면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개인화입니다. 사도행전 21장 10~11의 아가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삶에 정확히 필요한 말씀을 그 순간에 보내주십니다. 이것은 통계와 패턴 분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향해 직접 말씀하시는 사건입니다. 알고리즘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패턴'뿐이지만, 예언은 '인격적 만남'입니다. 이 차이를 다음 세대에게 분명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IT 기기가 한 가지 기능만 하던 시대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된 스마트 기기의 시대로 넘어왔듯, 이제 인공지능(AI)은 여러 도구를 한 번에 통합해서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편적인 경험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통합되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기대합니다.

이런 시대에 익숙한 다음 세대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목회자 한 사람이 설교라는 한 가지 통로로만 말씀을 전하는 구조는, 이 세대에게는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언이 회복된 예배는 다윗이 악기를 타며 예언했던 것처럼, 찬양과 말씀과 기름부음이 하나로 통합되어 흐르는 자리입니다.

환상을 보고 영적 황홀함을 경험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콘텐츠에는 없는 종류의 몰입, 즉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 몰입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을 본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사울의 이야기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죄에 대한 자각과 회개입니다. 기계는 나의 문제를 '분석'해줄 수는 있어도, 나로 하여금 무릎 꿇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어로 '나바'라 불리는 예언의 한 기능은, 성령의 감동 속에서 배 속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회중을 회개로 이끕니다. 이것은 정보 제공이 아니라 존재의 변화입니다. 효율성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다음 세대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눈물 흘리는 이 경험은 낯설지만 동시에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실재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전 14:5)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 기술이 인간의 모든 기능을 흉내 내려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기술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인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더욱 선명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최근 몇몇 대형 교회들이 '은사 개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이 변곡점의 시대에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예언은 결코 단순한 하나의 은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난 2000년간 교회가 쌓아온 말씀에 대한 이해, 신령한 은사에 대한 지식, 회개와 치유의 경험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피어나는 꽃이며, 인공지능(AI)이 모든 것을 대신해줄 것 같은 이 시대에 오히려 사람을 사람 되게 하고,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예언의 완성은 결국 한 분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예언의 성취이십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누가복음 24:4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