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근처 카페에서 종종 마주치는 한 중년의 성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여깁니다. 늘 표정이 편안하고, 서두르는 법이 없으며, 누군가 그를 화나게 해도 오래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은 말합니다. "저 사람, 예전엔 저렇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는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표현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나비가 되기까지 애벌레는 여러 번의 고통스러운 탈피를 거칩니다.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마침내 날개를 얻기까지, 그 과정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변화를 이끄는 것은 애벌레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심겨 있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신앙의 거듭남도 이와 비슷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람이 스스로 애써서 자기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안으로부터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그 성도가 경험한 변화도 바로 이 거듭남이었다. 그는 스스로 "내가 대단한 것을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셨다"고 고백할 뿐입니다.
그가 신앙을 깊이 알기 전에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술을 찾았습니다. 술은 잠시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지만, 다음 날이면 더 깊은 공허함만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패턴 속에서 삽니다. 마음이 불안하니 무언가로 그 불안을 메우려 하고, 그 무언가가 다시 마음을 병들게 하는 악순환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참된 평강을 맛본 후로는 술이 자연스럽게 필요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한복음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위로는 순간의 마취일 뿐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은 마음의 근본적인 갈증을 채웁니다. 이 성도가 깨달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갈증의 뿌리가 해결되니, 그것을 채우려던 헛된 습관이 저절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는 신앙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주변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습관적으로 만나왔지만 자신의 신앙과 삶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던 관계들, 오히려 옛 습관으로 자꾸 끌어당기던 관계들을 하나둘 정리했습니다. 이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린도후서 6:14). 마치 술을 좋아하는 사람 곁에는 술친구가 모이고,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 곁에는 노름꾼이 모이듯이, 사람은 자기가 사귀는 관계를 닮아갑니다. 그가 관계를 정리한 것은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자꾸 옛사람으로 끌어당기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 그는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괴로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지면서 그는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성숙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34).
그는 이제 지나간 잘못을 놓고 자책하는 대신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오지 않은 미래를 놓고 불안해하는 대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그 결과, 흐릿하게만 보이던 하루하루가 선명하고 소중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살았습니다. 화가 나면 화를 따라가고, 우울하면 우울함에 잠겨버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자기 수양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마음의 주권을 내어드린 결과입니다. 바울은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린도후서 10:5)라고 말합니다. 생각의 노예가 되는 대신 그 생각을 하나하나 그리스도 앞으로 가져가 점검하는 습관이 그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이제 그는 감정에 따라 춤추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인 절제와 온유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갈라디아서 5:22~23).
그는 이제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내 삶의 나침반이요 등대입니다." 방향을 잃고 흔들리던 인생을 다시 세워주신 분, 위태로운 순간마다 붙들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한 사람만의 간증이 아닙니다. 죄와 습관과 두려움의 노예로 살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복음의 약속입니다. "그런즉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한복음 8:36). 그가 누린 자유와 평안은 스스로 이룬 성취가 아니라, 그를 먼저 찾아오신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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