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사무엘하 16:11~12,14,21~22)
다윗은 드디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이제 그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일을 실행에 옮기려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일을 위해 정예병사 삼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군인들이었습니다. 새 수레를 준비하고, 성대한 행렬을 꾸몄습니다. 그 광경을 상상해보십시오. 삼만 명의 군사가 호위하는 가운데, 새 수레에 실린 언약궤가 천천히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다윗 왕의 위엄은 얼마나 대단해 보였을까요?
그런데 이 화려한 행렬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습니다. 소가 뛰는 바람에 언약궤가 기울자, 웃사라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궤를 붙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정성을 다했는데!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의 마음속에는 서운함과 억울함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언약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맡겨두고 돌아섰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겉보기에 다윗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행렬 속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치 다윗의 호위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언약궤가 마치 다윗 왕의 전리품처럼 수레에 실려 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한 행사를 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가 한국에서 최고의 성전을 짓겠다", "내가 세계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과 비전을 크게 가지라고 격려합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내가'라는 주어가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다윗의 첫 번째 시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아간 언약궤가 그들에게 재앙을 일으키자, 그들은 궤를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신기한 실험을 했습니다.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본 적 없고, 아직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암소 두 마리에게 언약궤를 싣고 이스라엘 쪽으로 보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젖먹이 새끼를 둔 어미 소가 새끼를 버려두고 낯선 길을 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소들은 울면서도 똑바로 벧세메스를 향해 갔습니다. 본능을 억제당하면서도 말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율법도 몰랐고, 언약궤 운반법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광경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아, 이것은 정말 여호와의 궤구나. 그분의 능력이 이 궤와 함께하는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율법을 아는 다윗은 실패했고, 율법을 모르는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제대로 보냈습니다. 왜일까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누가 주인인지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석 달 후, 다윗은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언약궤를 모셔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제사장들이 에봇을 입고 언약궤를 어깨에 메었습니다. 여섯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윗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속옷이 보일 정도로 격렬하게,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다윗은 이제 자신이 언약궤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호위해주셔야 한다는 것을,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아내 미갈은 이 모습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왕이 뭐 하는 짓입니까? 계집종들 앞에서 저렇게 품위 없이 행동하다니!" 하지만 다윗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내가 뛰놀겠으며, 오히려 계집종들에게 높임을 받을 것이오."
미갈은 왕의 품위를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미갈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했습니다. 그 차이는 명확했습니다. 미갈은 죽을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때 제사장 사독이 언약궤를 메고 나와 다윗을 따르려 했습니다. 언약궤가 가는 곳에 민심이 따를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가시오.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그분이 나를 다시 인도하사 그 궤와 그 계신 곳을 보게 하실 것이오. 그러나 그분이 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나는 여기 있으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도록 하시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다윗은 이제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중심이라는 것을, 정예병사 삼만 명을 동원해서 여호와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쫓겨 도망가는 죄인에게 언약이 함께하시면 그것이 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도 종종 다윗의 첫 번째 시도처럼 살아가지 않나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만큼 했는데", "내가 교회를 위해 이렇게 헌신했는데",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봉사했는데" 하며 마치 하나님께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나요?
다윗은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호위해주셔야 한다는 것을, 자신은 한없이 낮아지고 천해져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언약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춤추던 다윗의 모습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춤을 추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박수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펼쳐내시는 일에 합당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의 은혜에 온전히 의지하는 삶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때 후손의 언약을 주신 하나님, 다윗이 실패한 후에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무능함과 실패를 통해 당신의 언약을 이루어가십니다. 없는 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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