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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 결혼과 이혼 그리고 천국 이야기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1.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마태복음 19:6,12)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결혼 대비 거의 5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은 이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숫자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고,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의 의미도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단순히 "요즘 사람들은 인내심이 없어",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해"라고 한탄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성경은 이러한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마태복음 19장의 이혼 이야기를 읽을 때, 많은 사람들은 "결혼은 신성하니 이혼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하지만 정말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그것일까요?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그 앞뒤 문맥을 살펴봐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이혼 이야기는 양쪽으로 어린아이에 관한 이야기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치 샌드위치처럼 말입니다.

이야기는 제자들의 한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언뜻 보면 단순한 호기심 같지만, 이 질문 뒤에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열심히 기도하고, 누가 더 많이 헌금하고, 누가 더 선한 일을 많이 했는지를 겨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어떨까요? "나는 매일 새벽기도 나가", "나는 십일조 외에 감사헌금도 많이 해", "나는 전도를 몇 명이나 했어"... 이런 식으로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교회 안에서조차 우리는 끊임없이 '큰 자' 되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 앞에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오십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말씀을 "겸손해야 천국 간다"는 도덕적 교훈으로만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 천국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른들의 세상을 생각해보세요. 모든 것이 게임입니다. 바둑은 땅을 많이 차지해야 이기고, 장기는 상대 왕을 먼저 잡아야 이깁니다. 축구, 야구, 격투기... 모든 경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용서도, 사랑도, 양보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이 끼어들면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의 세상은 바로 이런 곳입니다. 누가 더 크고, 누가 더 강하고, 누가 먼저 성공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성취도에 따라 보상을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입니다.

반면 어린아이는 어떤가요? 아이들에게는 딱지가 소중합니다. 어른들 눈에는 휴지 조각 같은 딱지를 아이들은 보물처럼 여깁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 기준'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만든 쇠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누가 크고 작은가, 누가 더 많이 했는가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곳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 자신이 어린아이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어린아이에 비유하십니다.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세상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으셨습니다. 권력도, 재산도, 학벌도, 명예도 없이 구유에 누운 아기로 오셨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가난한 자로, 결국 십자가에서 죄인처럼 죽으셨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은 이런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시하고, 비웃고, 결국 죽여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들은 이 연약한 어린아이 같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분을 영접하고, 자신도 그런 어린아이의 삶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은 잃어버린 양 이야기와 용서에 관한 비유로 이어집니다. 특히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이야기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20만 년을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빚입니다. 그런 빚을 진 사람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합니다. 왕은 그의 빚을 완전히 탕감해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밖에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약 100일치 품삯) 빚진 사람을 만나 목을 잡고 감옥에 넣어버립니다. 일만 달란트에 비하면 먼지 같은 금액인데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나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하겠구나"라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 비유의 핵심을 놓친 것입니다. 이 비유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이 얼마나 큰지를 제대로 안다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백 데나리온처럼 작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흔적이 보일 때, "이러고도 네가 구원받은 사람이냐?"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은 어떤가요? 그것은 일만 달란트 탕감의 은혜를 잊고, 다시 백 데나리온을 계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용서의 관계를 벗어나 독자적인 율법 체계로 자신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 이혼 이야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무슨 이유든 있으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당시 유대인 남자들은 아내가 밥을 잘못 하거나, 이웃집 아내보다 못생겼다는 이유로도 이혼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로 돌아가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여기서 '한 몸'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제3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성경에서 잠은 늘 죽음을 상징합니다) 갈비뼈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이 둘이 한 몸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먼 훗날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옆구리가 창에 찔리고, 거기서 피와 물이 흘러나올 때, 교회가 탄생합니다.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결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결혼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어떻게 한 몸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그림, 하나의 비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결혼은 무엇을 가르쳐줄까요? 결혼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존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 했습니다. "나도 할 수 있어",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과의 연합이 깨졌고, 인간은 더 이상 누구와도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을 보면 타락 이후 "여자는 남자를 사모하고 남자는 여자를 다스리려 한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사모한다'는 것은 애틋한 그리움이 아니라 '조종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서로를 조종하고 다스리려는 관계,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결혼입니다.

그렇다면 이혼은 무엇일까요? 이혼은 인간이 결혼을 통해서도 절대 한 몸이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사실 모든 부부가 이미 '이혼한' 상태입니다. 정말로 한 몸인 부부는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보이려고 애쓸 뿐입니다.

그러니 이혼한 사람을 보며 혀를 차지 마세요. "저 사람은 인내심이 없어서 헤어졌어.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잘 유지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는 다 갈라져 있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이혼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왜 하나 될 수 없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신부였습니다. 그런데 타락해서 하나님을 떠나 '율법'이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율법은 "이것 해라, 저것 하지 마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남편입니다. 우리는 그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어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어 원래의 신랑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짜 결혼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 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결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고멜 같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은 열다섯과 보리 한 호멜 반,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게 낫겠네요." 예수님은 이에 대해 고자 이야기를 하십니다. 세 종류의 고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날 때부터 고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거세하는 사람들, 곧 율법주의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마음속 욕망까지는 제어할 수 없습니다.

셋째, 천국을 위해 고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특별히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고자'는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실패한 사람, 이혼한 사람, 홀로 된 사람, 연약한 사람 모두를 포함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도, 실패도, 부족함도 모두 당신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에게 매였으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내에게서 놓였으면,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결혼했으면 결혼한 대로, 독신이면 독신인 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 말은 무감각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정을 자신의 행복 추구의 현장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배우는 현장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결혼 생활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요? "아, 나는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평생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룰 수 없는 존재구나." 이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이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 행복한 사람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웁니다. 결혼 생활이 힘든 사람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웁니다. 이혼을 경험한 사람도 그 아픔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배웁니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웁니다.

스스로를 판단하지 마세요. "나는 결혼에 실패했으니 신앙도 실패한 거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도 판단하지 마세요. "저 사람은 이혼했으니 믿음이 없는 거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드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도, 실패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당신의 나라를 이루는 데 사용하십니다.

언젠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릴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 된 존재로 서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갈라질 수 없는, 진정한 한 몸으로 말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배웁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우리의 실패를 통해,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배웁니다.

결혼 생활 속에서 매일 경험하는 작은 갈등들,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 하나가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한계...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진짜 신랑이신 예수님께로 이끕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제 힘으로는 누구와도 하나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살아갑니다."

이것이 어린아이로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소자로 사는 삶입니다. 이것이 천국을 위한 고자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신부로 사는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