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사무엘하 7:12~16)
아브라함 언약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땅과 후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시고, 그의 후손을 통해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출애굽과 광야 여정을 거쳐 가나안 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의 경계를 실제로 온전히 차지한 왕은 다름 아닌 다윗이었습니다.
바로 이 다윗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다윗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후손과 왕위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왕위는 단순한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수렴됩니다. 이 다윗 언약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다윗보다 앞선 왕인 사울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사울의 왕권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요구한 왕이었습니다. 사무엘의 노년에, 그의 아들들이 사사로서 합당하지 않게 행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묻기보다, 눈에 보이는 대안을 요구합니다.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무엘이 평생을 사사로 살아오며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무엘조차 자식 농사는 실패했습니다. 이는 인간 지도자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동시에 사무엘의 기도는 개인적인 성공이나 소원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로서의 기도였음을 드러냅니다.
이 중보의 기도는 신약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로마서 8장은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고 말하고,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쉬지 않고 중보하신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종교적 기술”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요구 앞에서 사무엘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백성들이 왕을 원한 이유는 단순한 정치 체제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미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통해 충분히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강력한 왕을 더 신뢰하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그 결과 세워진 왕이 바로 사울입니다. 그는 백성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전쟁에 능한 장군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외모와 스펙, 리더십을 모두 갖춘 이상적인 지도자처럼 보였습니다. 백성들은 그런 사울을 보며 안도했고, 환호했습니다.
처음의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그의 관심은 점점 하나님이 아닌 자기 이름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기보다, 백성들 앞에서 존귀함을 받기를 원했고,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기념비로 남기려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시고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에 맞는 왕을 세우겠다.” 사도행전은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다윗의 인격이 사울보다 본질적으로 더 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 역시 명백한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사울과 대비되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입니다.
다윗이 처음 기름 부음을 받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소년이었고, 심지어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왔을 때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아버지 이새조차 다윗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던,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다윗을 선택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기준으로 일하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을 영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인간을 영웅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리며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그의 생애 전체를 보면 죄와 실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다윗을 통해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십니다.
골리앗은 키가 약 3미터에 달했고,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만 해도 60킬로그램이 넘었습니다. 창날 하나의 무게만 약 7킬로그램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사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전사입니다.
그런 골리앗을 다윗이 쓰러뜨렸다는 사건은 단순한 소년 영웅담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사건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술이나 용기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장면에서 요나단이 다윗을 알아봅니다. 요나단은 이미 여호와의 전쟁이 무엇인지 경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수, 자본, 능력, 시스템으로 하나님의 일을 가늠하려 합니다. 교회의 성공도, 신앙의 능력도 세상의 잣대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전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결국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사실 말입니다. 다윗 언약은 단지 한 왕조의 지속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강함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세워지는 나라를 예고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완성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윗 언약을 따라가며, 우리는 반복해서 이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다윗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약함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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