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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중요한 성경적인 가르침 -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며, 두 가지 재림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42~44)

아침 해가 떠오르는 방식을 생각해 봅니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빛을 감지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밤새 깨어 동쪽 하늘을 주시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새벽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찾아옵니다. 반면 깊은 잠에 빠진 이들은 한참 후에야 이미 높이 떠오른 태양을 보며 아침이 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같은 주님의 오심이지만, 그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는 것입니다.
'파루시아', 곧 주님의 임재하심은 단순히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시간의 폭을 가진 과정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밤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합니다. 도적은 미리 공고하지 않습니다. 문을 요란하게 두드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집을 찾아올 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경은 동시에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주님의 은밀한 오심은 세상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지만, 그분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가장 기다려온 순간입니다. 마치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이 멀리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듯, 영적으로 깨어있는 믿는이들은 주님의 임재의 기미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대환난 전에 하늘에서 공중으로" 오신다는 표현은 단순한 지리적 묘사가 아닙니다. 이는 세상의 큰 시험이 시작되기 전, 주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먼저 만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계시록 3장 3절의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약속처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공중으로 휴거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물리적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의 전환입니다.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땅에서의 기어다니는 삶을 끝내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믿는이들은 이 땅의 한계와 제약을 벗어나 주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이 휴거는 보상이면서 동시에 보호입니다. 주님을 깨어 기다린 자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만남이요, 다가올 환난으로부터는 은혜로운 구원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홍수 이전에 준비되었듯이, 롯이 소돔에서 나온 후에 불이 내렸듯이, 주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기시고 난 후에 세상에 대한 심판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은밀한 오심 이후, 이 땅에는 대환난이라는 극심한 시험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환난 후에, 주님은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오십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모든 눈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영광 중에 오십니다.

이때 주님은 더 이상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오는 모습이 아닙니다. 왕이 자신의 왕국을 심판하고 통치하기 위해 오시는 모습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세상에 빠져 살던 사람들에게 이 오심은 충격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은밀한 오심의 징조들을 무시했습니다. 영적인 준비보다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공개적인 오심은 갑작스러운 심판의 날이 됩니다.

이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는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종말론적 사건들을 연구하거나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동화되지 않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반면 세상에 빠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히 죄를 짓는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세상의 체계와 가치관 속에 완전히 안주하여, 영원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보다 이 땅의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감각이 둔화되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은밀한 오심을 기다리는 자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는 긴장하고 불안해하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민감하고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우리의 영적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재림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소망의 대상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초대교회의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표현이 아니라, 신랑을 그리워하는 신부의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셋째,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살되 이 땅에 속하지 않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본 재림의 이중적 모습은 결국 하나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 오심은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심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깨어서 준비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주님의 은밀한 오심을 영광스럽게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공개적인 오심 앞에서 두려워 떨 것인지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복음 24:42). 이 말씀은 협박이 아니라 사랑의 초대입니다. 준비하라는, 그래서 그분과의 영광스러운 만남을 놓치지 말라는 초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