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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 세상의 피리 소리에 춤추지 않는 삶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8.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누가복음 7:31~35)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음 도착한 여행자들은 대부분 레콜레타 묘지를 들릅니다. 관광 안내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명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이 단순한 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좁은 골목처럼 이어진 무덤들 사이를 걷다 보면, 이것이 죽은 자들의 도시인지 산 자들의 도시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대리석 기둥,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청동으로 주조한 문짝. 어떤 무덤은 웬만한 카페보다 넓고, 어떤 무덤은 아예 작은 예배당처럼 지어져 있습니다. 그 골목의 어딘가에 항상 꽃이 놓여 있는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에바 페론의 무덤입니다.

에바 마리아 두아르테. 1919년, 아르헨티나 팜파스 초원의 작은 마을에서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본처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에바의 가족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조차 제대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수치와 가난이 그녀의 유년을 지배했습니다. 열여섯 살, 그녀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부에노스아이레스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도시는 냉혹했습니다. 하지만 에바에게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얼굴과 몸, 그리고 무엇보다 타오르는 생존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배우가 되었고, 라디오 드라마의 목소리가 되었고, 마침내 군 장교였던 후안 페론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스물여섯 살에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습니다. 사생아 소녀가 국가 원수의 부인이 된 것입니다.

영부인이 된 에바는 화려하게 살았습니다. 파리에서 디올 드레스를 맞추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즐겨 찼으며, 유럽 순방 중에는 프랑코, 교황까지 만나며 국제 무대를 누볐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빈민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을 약속하는 "노동자의 성녀"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에비타"라고 불렀습니다. 작은 에바, 우리의 에바.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던 에바는 서른셋에 멈추었습니다. 자궁암이었습니다. 임종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37킬로그램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훗날 냉정하게 평가했습니다. 에비타의 복지 정책은 근본적 구조 개혁이 아니라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었다고 말입니다. 세계 경제 7위였던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만성적 부채 국가로 전락한 데에 그녀와 페론주의의 책임이 크다고 합니다. 화려했던 성녀의 이면에는 자기 이름을 향한 거대한 욕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레콜레타 묘지의 그 최고급 관 안에, 에바는 지금도 누워 있습니다. 매일 찾아오는 추모객들과 그녀는 아무런 대화도 나눌 수 없습니다. 꽃을 받을 수도, 감사 인사를 건넬 수도 없습니다. 그토록 집요하게 쟁취했던 이름과 명성이, 결국 몇 평짜리 대리석 방 안에서 조용히 부식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에바 페론과 똑같이 서른셋에 죽은 사람이 또 한 명 있습니다. 그는 에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변변한 집도 아니었습니다. 가축들이 쉬는 마구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목수였고, 그 역시 평생 목수로 살았습니다. 그가 공개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고작 3년이었으며, 활동 반경은 걸어서 며칠이면 충분히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3년 동안 그가 한 일들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었고, 죽은 자가 걸어 나왔으며, 폭풍이 그의 한마디에 잠잠해졌습니다. 수천 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빵과 물고기가 불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오랜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민중에게, 이런 능력자가 왕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산으로 피했습니다. 왕이 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른셋 되던 해, 그는 죄인으로 낙인찍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무덤을 잠시 빌려야 했습니다.

그 빌린 무덤은 사흘 후 비어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그 빈 무덤을 역사의 전환점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왕이라 칭했고, 승리자라 불렀습니다. 에바 페론의 화려한 무덤과 예수의 빈 무덤. 이 대비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 점심시간입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결혼식 놀이입니다. 피리 소리 흉내를 내며 "신나게 춤춰!"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팔짱을 끼고 서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심통이 납니다. 이번엔 장례식 놀이로 바꿉니다. "같이 울어!"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울지 않습니다. "왜 같이 안 해?" 그 아이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아마도 설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냥, 그 놀이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준 비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 왕국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혼인잔치 피리를 불고 있었는데, 요한은 그 잔치에 끼어들기는커녕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저 사람, 귀신 들렸어." 예수님은 반대였습니다. 세리와 창녀들과 밥을 먹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사람들은 또 말했습니다. "저 사람, 먹보에 술꾼이야. 죄인들의 친구잖아." 두 사람 모두 비난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세상의 피리 장단에 맞춰 춤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춤추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불편한 존재인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인간 내면에 수많은 "애벌레 자아"들이 꿈틀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미숙하고 탐욕스러운 자아들이 의식 아래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숨기기 위해 두꺼운 방어막을 칩니다. 종교심, 도덕적 행동, 사회적 명성, 그 방어막 뒤에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연극을 계속합니다.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데 갑자기 불편해지는 순간이나, 말씀이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와 정확히 어딘가를 찌르는 느낌이 드는 그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저 설교자가 좀 극단적인 것 같아." "저건 내 상황에는 맞지 않아." 방어막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바로 신호입니다. 방어막이 뚫리는 순간, 내 안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진짜 자아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 없이는, 내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거리를 뛰어넘어 오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들을 보십시오. "옷이 두 벌이면 한 벌을 나누어 주라. 세금을 정해진 것 이상 거두지 말라. 받는 월급에 만족하며 살라." 이것은 단순한 도덕 수칙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래를 위해 비축해 두는 잉여, 즉 "세상 안에서의 희망"을 내려놓으라는 요구입니다. 인간은 내일이 불안하기 때문에 오늘 더 쌓으려 합니다. 그 쌓아두기가 무너질 때, 비로소 다른 소망을 향해 눈을 들게 됩니다.

1912년 4월 15일 새벽,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배 안에서 마지막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았던 8명의 악단이 있었습니다. 배가 기울기 전까지 그들이 연주한 것은 경쾌한 재즈와 왈츠였습니다. 그러나 물이 갑판 위로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선택한 마지막 곡은 달라졌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것이 인간의 패턴입니다. 잔치가 벌어지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잊고, 잔치가 엎어질 때에야 비로소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그 잔치를 부수시는 것이 때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레콜레타 묘지의 반 이상이 폐허로 방치된 것처럼, 그토록 화려하게 세운 것들이 무너지고 나서야 우리는 무엇이 진짜인지를 보기 시작합니다.

다시 레콜레타로 돌아가 봅시다. 묘지의 골목을 걷다 보면, 에바 페론의 무덤 옆으로 몇 걸음만 더 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문이 부서진 채 방치된 무덤들입니다. 한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거액을 들여 지은 무덤들입니다. 이름을 새긴 돌판은 이끼에 뒤덮였고, 그 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 폐허 옆에 있는 에바의 무덤에도 꽃이 놓입니다. 하지만 그 꽃을 에바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반면 예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볼 것이 없습니다. 관광객들이 예루살렘의 무덤 터를 찾아가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아무것도 없음이 2,000년 동안 세상을 바꾸어 왔습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누가복음 7장 35절의 이 말씀은, 지혜로운 삶이 결국에는 옳다고 증명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피리에 맞춰 춤추지 않고, 세상의 애곡에 함께 울지 않는 삶. 그것은 당대에는 이해받지 못합니다. 귀신 들렸다 소리를 듣고, 먹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삶이 옳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을 잠시 내려놓아도 됩니다. 이름을 남기려는 집착에서 손을 놓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의 낡은 것들을 조금씩, 때로는 아프게 찍어 나가십니다. 그 도끼질이 억울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찍힘이 오히려 반가워지는 날이 옵니다.

이름 없이 왔다가 이름 없이 가는 것, 레콜레타의 화려한 무덤들 사이에서, 빌린 무덤을 사흘 만에 돌려준 그 삶이 결국 가장 크게 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