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사무엘하 7:16)
레바논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다윗의 마음에 불편함이 스쳤습니다. 전쟁은 끝났고, 원수들은 물러갔고, 나라는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평온함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은 이렇게 화려한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여전히 휘장 안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을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천막 안에 있구나."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했습니다. 나단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소서." 그날 밤, 하나님께서 나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내가 언제 집을 지어달라고 하였느냐?"
부모님 생신을 맞아 아들이 정성껏 선물을 준비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비싼 물건을 사들고 의기양양하게 나타났는데,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보다 네가 잘 사는 게 내 선물이야." 다윗이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려는 다윗의 마음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음에 보상을 주시는 대신,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집'은 건물이 아닙니다. 왕조, 곧 다윗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혈통과 나라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네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그 아들이 범죄하면 징계는 하겠지만, 사울에게서 은총을 거두었던 것처럼 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가 이어졌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이 말씀을 들은 다윗이 기도하러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참 독특합니다. 보통 이런 은혜를 입으면 "그렇다면 제가 주님을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붙들고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주십시오.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언뜻 들으면 뻔뻔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언약을 아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전적으로 붙드는 기도입니다.
세월이 흘러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7년에 걸친 공사였고, 그 규모와 화려함은 당대 최고였습니다. 봉헌식 날, 솔로몬이 제단 앞에 서서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늡니다. 그런데 그 기도 역시 다윗의 기도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 위대한 성전을 지었다는 자랑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성전을 지은 것이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임을 솔로몬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지은 이유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언약궤,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담은 그 궤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당혹스러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며 그토록 아름다운 기도를 드렸지만, 말년에 수백 명의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 그들의 신들에게 절했습니다. 성전을 지은 사람이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솔로몬의 시대에는 나라를 빼앗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은 명확하게 말합니다. "다윗을 위하여." 솔로몬 이후 왕조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끊임없이 악한 왕들이 등장했지만, 남 유다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다윗을 위하여 멸절하지 아니하셨더라." 인간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이 역사를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네가 어떻게 되든 나는 네 아버지다"라고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자식의 성취나 실패가 그 관계를 끊을 수 없습니다. 언약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다윗 왕조도 끊어지는 날이 왔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눈이 뽑힌 채로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습니다. 다윗의 보좌는 사라졌습니다. 영원히 견고하리라던 그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리고 수백 년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침묵을 깨고 마태복음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끊어진 것처럼 보였던 혈통이 끊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좌를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역사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조용히 그 길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이 부활하심으로써, 다윗에게 하셨던 "영원히 견고한 왕위"의 약속이 완성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으려 했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은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영원한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해드리려 할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가장 큰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언약은 인간의 능력이나 신실함에 기대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이 그 언약을 붙듭니다.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기도는 어쩌면 이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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