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누가복음 15:25~32)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탕자의 비유(눅 15:11~32)는 복음 전체를 압축해 놓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끝내 파멸의 길로 간 둘째 아들, 그러나 그를 끝까지 기다리고 품어 주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큰아들, 이 짧은 이야기는 우리의 신앙 여정과 마음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렘브란트는 인생의 가장 깊은 고통을 경험한 뒤, 이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세상적 성공과 쾌락을 누렸지만, 곧 이어 닥친 연이은 불행,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잃는 고통은 그의 영혼을 깊은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런 절망 속에서 그는 비로소 “돌아온 탕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 <탕자의 귀향>에는 단순히 성경 이야기를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회개와 하나님의 품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 속 아버지의 두 손은 특별합니다. 왼손은 강인한 아버지의 손, 오른손은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은 능력과 사랑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죄인을 강하게 붙들어 주시면서도 동시에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는 은혜의 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은 차갑게 우리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두 손으로 우리의 상처 난 등을 덮어 주십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큰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 곁에서 늘 성실하게 일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돌아왔을 때 그는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분노했습니다. 사실 이 큰아들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 오래 신앙생활을 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예배 드렸는데 왜 내 삶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헌신도 하고 봉사도 했는데 왜 내 기도는 잘 응답되지 않을까?” 그런데 새로 믿은 사람, 혹은 세상에서 방황하다 돌아온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누릴 때, 마음 한쪽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그림 속에서 어둠 속에 서 있는 큰아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 큰아들이 이미 누리고 있던 가장 큰 복은 바로 아버지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그 축복을 보지 못하고, 단지 눈에 보이는 보상만을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생활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 자체입니다. 탕자처럼 큰 죄를 짓고 돌아온 사람이나, 큰아들처럼 늘 곁을 지킨 사람이나, 결국은 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랑은 누구에게도 더 크거나 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 사랑을 어떻게 깨닫고 누리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헐벗은 옷자락과 상한 발, 그리고 아버지의 포근한 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희가 얼마나 멀리 떠나갔든지, 얼마나 오래 방황했든지, 너희가 지금 내 품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나는 기뻐하며 너희를 안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탕자처럼 죄에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용기, 그리고 큰아들처럼 굳어 버린 마음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는 겸손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둘째 아들만의 회심 이야기가 아니라, 큰아들에게도 필요한 회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어떤 이는 먼 나라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또 어떤 이는 곁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멀어진 자녀가 다시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탕자입니까, 아니면 큰아들입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두 같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야 할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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