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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이야기

듣는 귀는 말하는 입만큼 중요하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1.

우리는 보통 설교자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설교자가 말씀을 얼마나 잘 전하는지, 성경 해석을 바르게 하는지, 목소리가 힘이 있는지, 설교가 은혜로운지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지 설교자가 진리를 말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듣는 귀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위대한 설교자라 할지라도 그 말씀은 씨 뿌린 밭에 떨어진 씨처럼 헛되이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는 흔히 착각합니다. 예배 시간에 앉아 설교를 들었으니 그만큼 교훈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귀에 말씀이 흘러들어왔다고 해서 내 삶에 뿌리가 내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진지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이것은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라는 태도로 들을 때만 비로소 그 말씀이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줍니다. 선지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백성들은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았습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잠언1:24~25).

주님도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열매를 맺고 어떤 사람은 아무 소득이 없는 이유가
‘듣는 마음의 밭’에 달려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바울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며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행 28:26)고 탄식했습니다. 결국 그는 유대인을 떠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듣는 태도의 비밀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지식이나 학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역사는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단순한 새의 울음이었지만, 말씀에 민감한 귀는 그 소리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니콜라스 헤르만(일명 로렌스 형제)은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보고 영혼 깊은 곳에서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스펄전은 무명 주일학교 교사의 단순한 격려의 말을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무디는 한 평범한 중년 부인의 진실한 간증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입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준비가 된 귀와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한 설교자만 통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아주 작은 일, 보잘것없는 계기, 미약한 통로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때 중요한 것은 말씀하시는 도구가 아니라,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지 없는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 자리에 앉을 때마다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오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듣는 자의 겸손한 자세는 설교자의 탁월함보다 훨씬 더 많은 은혜를 불러옵니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받아들일 귀가 준비된 자는 큰 빛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큰 빛이라도 마음이 닫혀 있다면, 그것은 어둠 속에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훌륭한 설교자만큼, 훌륭한 청자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을 귀를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와 진리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 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