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권하여 이르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케도니아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사도행전 16:9~10,14)
디모데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복음이 막혀 있던 루스드라와 달리, 빌립보에서는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강가에서 말씀을 전했고, 마음이 열렸고,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건 잘 풀리는 사역”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라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음에도 그렇게 순조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네.” 이 한마디는, 복음을 오래 함께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참된 길을 따르는 자에게는 언제나 환영과 핍박이 함께 옵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지만, 동시에 기존의 질서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애쓴다고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고, 지혜를 짜낸다고 우회할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그때 찾아온 사람이 바로 루디아였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환대’를 통해 길을 여십니다. 루디아는 막 복음을 들은 새 신자였습니다. 그녀는 신학도 없었고, 사역 경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신경 쓰세요. 나머지는 제가 맡겠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복음에 내어놓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역을 ‘능력 있는 사람’, ‘준비된 사람’, ‘훈련된 사람’이 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주 막 복음을 만난 사람의 열린 집을 통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 세리 레위의 집, 이름 없는 사람의 다락방, 하나님 나라는 늘 환대의 자리에서 자라났습니다.
루디아의 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집은 아직 교회가 아니었지만, 이미 교회의 본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기다리는 사람들, 함께 모이기를 사모하는 마음, 그리고 기꺼이 나누려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단호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습니다.” 이 말은 겸손이자 원칙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금전적 오해를 낳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량 사역을 고집했고, 누구의 후원도 쉽게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루디아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저는 반드시 뜻을 이루고 말 거예요.”
이 장면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사도의 결단보다 강한 평신도의 확신을 통해 길을 여십니다. 사역자의 논리보다, 구원받은 영혼의 단순한 사랑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이 초대는 ‘사람의 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준비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마케도니아 사람의 이름은 ‘루디아’였습니다. 디모데의 농담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선생님, 마케도니아 사람을 기다리셨잖아요. 그런데 그 이름이… 루디아였네요.” 바울은 분명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한 남자의 모습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환상을 여인의 환대로 성취하셨습니다. 바울이 상상한 ‘도움’은 아마도 동역자였을 것입니다. 재정적 후원자나, 지도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늘 우리의 예상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도와달라”고 외치던 마케도니아의 필요를, 한 여인의 열린 집과 눈물 어린 고백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오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모습으로 오십니다.
복음은 결국 ‘집’에서 자랍니다. 다음 날 아침, 바울 일행이 루디아의 집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놀랐습니다. 집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화목하고,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더 이상 단순한 주택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반드시 강단에서만이 아니라, 식탁에서, 거실에서, 열린 마음 속에서 교회를 세우십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보다, 열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루디아처럼 말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마케도니아 사람’은 너무 거창한 모습으로만 상상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곁에서, 조용히 문을 열고 기다리는 루디아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복음은 그렇게, 예상 밖의 사람을 통해 가장 확실한 길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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