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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

디도의 일기(07) - 빌립보로 들어가는 길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2.

배가 네압볼리 항구에 닿았을 때, 그들은 아직 빌립보에 들어서지도 않았지만 이미 한 가지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마케도니아의 한 도시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빌립보는 지리적으로는 그리스 땅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로마 그 자체였습니다.

에그나티아 가도를 밟는 순간부터 공기는 달라졌습니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길, 라틴어로 쓰인 이정표, 로마 군인의 냄새가 묻어나는 행인들의 걸음걸이가 모든 것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로마다.”

바울 일행은 로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로마의 중심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빌립보는 옥타비아누스가 특별히 아끼던 도시였습니다. 로마의 퇴역 군인들을 이곳에 정착시키며, 빌립보를
‘작은 로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사람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식민지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산다고 믿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로마 시민권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체성이었습니다. 말하는 언어, 입는 옷, 사용하는 돈, 법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나는 로마다”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객의 말, “로마 시민이면 빌립보에서는 안전하다”라는 말은, 결국 잔혹한 역설로 드러나게 됩니다. 빌립보가 로마에 지나치게 충성했기 때문에, 오히려 복음을 들고 온 로마 시민 바울과 실라는 위협이 되었던 것입니다.

빌립보는 로마 제국에 충성함으로 특권을 누렸습니다. 자치권, 세금 혜택, 법적 특권, 이 모든 것은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시민들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꼈습니다. 이 도시의 질서를 흔드는 자,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거해야 했습니다.

복음은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이사도 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예수는 주이시다”라고 선포합니다. 이 한 문장은 빌립보에서는 정치적 선언이었고, 제국에 대한 도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이 말은 매우 도발적입니다.

빌립보 사람들이 가장 자랑하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로마 시민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자부심의 한복판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너희는 로마 시민이 아니다. 너희는 하늘의 시민이다.”

빌립보 거리에는 로마식 신전이 있었고, 로마식 시장이 있었고, 로마식 오락과 질서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럴듯했고, 강해 보였으며,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금광이 사라지자 그리스가 몰락했듯, 권력은 언제나 다른 권력으로 대체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은 제국을 대체하려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제국보다 더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복음은 사람의 시민권을 바꿉니다. 소속을 바꾸고, 충성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한가운데 살지만, 세상에 의해 규정되지 않습니다. 로마 안에 있으나 로마에 속하지 않은 사람, 바로 그 정체성이 빌립보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공이 주인이 되고, 안정이 신이 되고, 다수의 의견이 진리가 되는 사회,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언어를 쓰고, 돈을 쓰고, 제도를 이용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너는 어디의 시민인가?” 우리가 빌립보를 걷고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는 세상 한복판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다른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시민권, 빌립보로 들어가는 길에서, 바울은 도시를 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충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이곳에서 복음은 반드시 충돌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충돌은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의 탄생을 위한 진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