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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

디도의 일기(04) - 드로아에서 기다린다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6.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는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도 위에 표시된 선을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역 계획서도, 장기 전략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좇을 뿐”이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면 무모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장면을 “방황”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가장 성숙한 순종의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실라는 답답해했습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고 떠났단 말입니까?” 이 질문은 오늘 우리의 질문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하나님, 대체 언제까지입니까?” “방향 정도는 알려 주셔야 하지 않나요?” 하지만 바울은 담담합니다. “쉽든 험하든, 하나님의 뜻이면 충분하네.” 바울은 계획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계획을 쥐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미래를 움켜쥐는 대신, 하나님께 “언제든 방향을 바꾸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길을 아는 게 아니라, 내비게이션이 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태도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경로가 바뀌어도, 목적지는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이 그를 앞으로 가게 했습니다.

드로아로 가는 길에서 그들은 여러 번
‘아닌 것 같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두니아도 아니고, 에베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면 어디냐는 질문에 답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환상도 없었습니다. 다만 계속 가던 길을 가야 할 것 같은 미묘한 느낌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니오’를 통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두운 밤, 손전등을 들고 산길을 걸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손전등은 멀리까지 비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음 한 걸음은 충분히 보게 해 줍니다. 바울의 여정이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전체 지도를 보여 주지 않으셨지만, 지금 가야 할 한 걸음만은 막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이 드로아였습니다. 항구 도시, 문명의 경계, 동방과 서방이 맞닿는 곳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도시의 전략적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드로아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세나.” 얼마나 기다리느냐는 질문에 바울은 이렇게 답합니다. “됐다 싶을 때까지!” 이 말은 무책임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책임 있는 신앙의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하나님께 주도권을 넘겨 드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빵 반죽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굽기 시작하면 속은 설익고 겉만 탑니다. 가만히 덮어 두고 기다릴 때, 반죽은 스스로 부풀어 오릅니다. 드로아에서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방해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날, 바울은 디모데를 데리고 트로이 성터로 갑니다. 한때 세계를 떨게 했던 도시, 영웅과 전쟁, 지혜와 교만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은 돌무더기뿐입니다. 트로이는 인간의 지혜로 세운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무너졌습니다. 반면, 드로아에서 시작될 복음은 아무 성도, 군대도, 무기도 없이
세계를 뒤흔들게 됩니다.

사람의 업적은 시간이 지나면 박물관에 남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심장에 남습니다. 바울은 이 폐허 앞에서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것은 트로이와 다를 것이다.” 무너지는 제국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세워질 것임을 말입니다.

드로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이 주어지고, 복음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우리 인생에도 드로아가 있습니다. 방향이 보이지 않고,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시간, 그러나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기 직전의 순간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억지로 움직이지 말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제가 아니라 주님이 ‘됐다’고 하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 기다림이 당신 인생의 드로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