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립보는 특별한 도시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번듯하고 질서정연했습니다. 로마의 법, 로마의 언어, 로마의 군기와 자부심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자신을 “로마 시민”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 정체성은 일종의 자랑이자 방패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도시일수록, 하나님을 찾는 자의 자리는 보이지 않게 밀려나 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회당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 그는 말씀의 토대가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습니다. 유대인 열 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단순한 행정적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체계 위에 세워진 곳인가를 보여 주는 징표였습니다.로마의 영광은 넘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자리는 없었습니다.
회당이 없다는 사실은 바울을 잠시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돌아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열 명이 되지 않는 도시에는 회당 대신 강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결 예식을 위해 물이 필요했고, 그 물가에서 하나님을 찾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환경이 안 됩니다.” “여건이 안 됩니다.” “여긴 너무 세속적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환경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회당이 없으면 강가로 갔고, 강가에도 사람이 없으면 기다렸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중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자리에서, 밀려난 자리에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안식일 아침, 간지테스 강가에는 남성 지도자도, 율법 교사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것은 몇 명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사회적·종교적 중심에 있던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당대의 문화로 보자면 매우 이례적입니다. 공적인 종교 토론과 예배는 철저히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들의 모임은 여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종종 제도 밖에서 마음을 준비시키십니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자주색 옷감을 다루는 직물 조합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자주색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황제의 옷에만 허락된 색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이미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녀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여시니”(행 16:14)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루디아가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우수해서도 아닙니다. 사업적 감각이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복음은 언제나 ‘열린 마음’에 들어갑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이런 사람과 같습니다. 성공했지만 공허한 사람, 모든 것을 가졌지만 이유를 모르는 불안이 있는 사람, 겉으로는 단단하지만, 속으로는 질문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 루디아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강가에서 일어난 일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성전도 없었고, 회당도 없었으며, 군중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빌립보 교회가 태어났습니다. 교회는 예배당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 집은 곧 예배의 장소가 되었고, 쉼의 공간이 되었으며,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 삶은 복음이 머물 수 있는 집인가?” 벽이 아니라, 의자가 아니라,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 교회가 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훗날 바울에게 가장 깊은 위로가 되는 공동체가 됩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도, 외로움에 짓눌릴 때도,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교회였습니다. 그 모든 시작이 어디였습니까? 로마의 중심도, 웅장한 회당도 아닌, 도시 외곽의 강가였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작은 순종 하나를 통해, 열린 마음 하나를 통해, 그리고 오늘도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회당을 찾고 있느냐, 아니면 내가 이미 서 있는 강가를 보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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