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몸에는 다섯 가지 뚫린 구멍이 있습니다. 눈, 귀, 코, 입,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반응하는 감각의 통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구멍들이 인간의 죄의 출발점이라는 고백은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뚫린 구멍’이란 표현은 육체적 기관을 말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깊은 내면의 문지방을 가리킵니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들리는 것 이면에 작동하는, 냄새 맡고 말하는 욕망의 자리를 말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저지른 살인은, 단지 도끼질 하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먼저 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난과 불의, 그리고 약자에 대한 연민과 엘리트적 오만이 뒤섞인 시선, 그 눈에서 죄는 싹을 틔웠습니다. 귀는 세상의 혼탁한 논리를 들었습니다. "강자는 약자를 제거할 수 있다", "사회 정의는 때로 폭력을 수반한다"는 왜곡된 정의감이 그 귀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입은 자기합리화로 가득 찬 논리를 토해냈고, 결국 손은 그 사악한 의도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성경의 첫 번째 범죄도 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 그 눈에 비친 선악과는 더 이상 하나님의 금령이 아니었습니다. 그 눈이 욕망으로 물들자, 귀는 뱀의 말을 진리로 들었고, 입은 그것을 베어 물었습니다. 모든 죄는 그렇게 뚫린 구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공자는 인간의 이목구비가 얼마나 쉽게 죄의 통로가 될 수 있는지를 경계했습니다. 예의가 아닌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뜻은 곧 ‘이 모든 구멍을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한국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한 장면에서, 스승 스님은 자신이 길러낸 청년이 범죄자가 되어 돌아오자, 자신의 교육 실패에 대한 회한으로 창호지에 “폐(閉)”자를 써서 자신의 눈, 귀, 코, 입을 막습니다. “모든 죄는 뚫린 구멍에서 시작된다”는 그의 탄식은 단순한 영화적 상징이 아니라, 죄의 근원을 향한 깊은 통찰이자 경고입니다.
이목구비는 단지 감각의 기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잇는 경계선이자, 선과 악의 문턱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하며, 무엇에 마음을 두는가에 따라 영적인 방향이 달라집니다. 죄는 그렇게 조용히 들어옵니다. 눈이 방심할 때, 귀가 허용할 때, 입이 풀릴 때, 코가 탐욕의 냄새를 맡을 때, 죄는 우리의 마음에 거처를 잡습니다.
현대 사회는 이 ‘뚫린 구멍’의 시대입니다. 24시간 켜진 스크린, 끝없는 정보의 홍수, 자극적인 콘텐츠는 우리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유튜브, SNS, 뉴스, 광고는 감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마음을 빼앗고, 결국 행동을 바꾸고, 삶의 방향을 왜곡합니다. 범죄는 극소수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감각을 통해 서서히 뿌리내리는 일상 속의 위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자기검열이 필요합니다. 눈을 지키십시오. 욕망을 부추기는 것을 보지 말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귀를 조심하십시오. 거짓과 불의한 이야기를 듣지 마십시오. 입을 조심하십시오. 정죄와 비방과 거짓이 아니라, 은혜와 진리를 말하십시오. 코를 조심하십시오. 탐욕의 냄새에 매혹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절제된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야고보는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이 욕심은 감각을 통해 마음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감각의 문을 지키는 것이 곧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러 사건, 사고의 소식을 듣습니다. TV를 켜면 범죄가 흘러나오고, 세상은 점점 거칠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 안의 눈, 귀, 입, 코가 죄의 문이 될 수 있다면, 나 또한 죄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외쳐야 합니다.
“뚫린 구멍을 조심하라. 죄는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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