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위기 1:4~9)
성경을 처음 읽는 이들에게 레위기는 가장 낯설고, 가장 잔인해 보이는 책일지도 모릅니다. 피가 흐르고, 짐승이 죽임을 당하며, 불에 태워지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이게 정말 하나님 말씀 맞아?”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레위기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은혜로운 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내신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내산에 임하신 하나님 앞에서 백성은 두려움에 떱니다. 산에는 불이 붙고, 천둥과 번개가 치며,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가 울립니다. 출애굽기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죄인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 레위기입니다. “그렇다면 죄인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레위기의 모든 제사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며, 그 첫머리에 등장하는 제사가 바로 번제입니다.
레위기 1장 4절에서 제물을 드리는 자는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이 안수는 형식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히브리적 의미에서 안수는 ‘동일시’입니다. 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이 짐승이 바로 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죽어야 할 존재는 제가 맞습니다.” 어느 날 병원 응급실에서 보호자가 의사에게 말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선생님, 제 장기를 떼어내서라도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 말에는 단순한 부탁을 넘어선 자기 전가가 있습니다. ‘이 아이의 고통이 차라리 나에게 오기를 바랍니다.’
번제의 안수는 그보다 더 처절합니다. 짐승은 곧바로 잡히고, 피가 쏟아지고,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뜨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제물을 드린 사람이 바로 옆에서 지켜봅니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눈을 돌릴 수 없습니다. “저 처참함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이것이 번제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죄를 대개 ‘실수’ 정도로 여깁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마음이 약해서 그랬어.” 그러나 번제는 말합니다. 죄는 실수가 아니라 죽음에 합당한 반역입니다. 제물의 가죽이 벗겨지는 모습은, 우리가 애써 포장해 온 자기 의와 체면이 벗겨지는 장면입니다. 각을 뜨는 장면은, 인간 내면 깊숙이 숨겨둔 욕망과 위선이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마치 법정에서 모든 증거가 공개되는 순간처럼, 변명은 사라지고 오직 사실만 남게 됩니다. “너는 죄인이다.”
레위기는 번제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불에 타는 고기 냄새가 향기로울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불타는 고기 냄새를 기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죄인이 자기 자리를 정확히 아는 그 순간입니다. “하나님, 저는 저주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저를 살릴 어떤 명분도 제 안에는 없습니다.” 이 고백이 올라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향기롭게 받으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서 끝까지 유지되어야 할 것은 열심이 아니라 정체성입니다.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더 착해져라.” 대신 말합니다. “너는 여전히 죄인이다. 그러나 은혜로 산다.” 자신의 의를 붙드는 순간, 은혜는 필요 없어지고 맙니다.
번제에서 특이한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는 것입니다. 내장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를 상징합니다. 배고픔, 생존, 육신의 만족, 우리는 하루를 “뭐 먹지?”로 시작하고 끝냅니다. 정강이는 땅에 가장 밀착된 부분입니다. 소가 앉을 때 가장 먼저 땅에 닿는 곳입니다. 이는 세상의 힘, 현실의 가치, 눈에 보이는 안정에 기대어 사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씻는다는 것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떡을 위해 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신뢰했습니다.” 말씀대로 살기보다, 세상이 주는 안전을 선택해 온 우리의 민낯이 씻김을 받는 것입니다.
번제는 매일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의 피는 죄를 덮을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은 더 이상 짐승이 아닌 자기 아들을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다시 번제물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성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분이 저 자리에 계실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저 자리는 오직 제 자리입니다.” 이 고백이 바로 회개이며, 이 상한 심령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인 것입니다.
성도는 더 나은 사람이 된 증거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도는 아무 공로 없는 자신을 살리신 은혜를 증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의 자랑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나는 죄인이었고, 지금도 죄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다.” 번제물 앞에 섰던 그 자리, “저 저주가 바로 나의 것”이라 고백하던 그 자리가 성도가 평생 떠나지 말아야 할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만, 죄는 깊어지고 은혜는 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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