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후 3:17)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다 보면 원치 않는 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병들고, 상처받고,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깊은 절망과 어둠 속을 걷게 되지요. 그 가운데에서도 '귀신들림'이라는 현상은 매우 특별하고도 심각한 불행입니다. 그런데 이 불행은 종종 사람들의 오해 속에서 더욱 악화됩니다. 귀신들림은 단순한 정신질환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신앙을 가진 이들조차도, 이 문제를 단지 심리적 또는 의학적 문제로 축소해 버립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귀신들림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의사조차도 귀신들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것은 학문과 과학의 권위를 절대시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집단적인 거부감과 교만 때문입니다. 축사는 종종 미신이나 무속 행위로 오해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분은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들린 한 사람을 만나 그 안에 들어있던 ‘군대’ 귀신을 몰아내셨습니다. 그 귀신들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바다에 몰살했습니다. 이 사건은 귀신이 실제로 사람의 몸을 거처로 삼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귀신은 그저 공중에 떠다니는 존재가 아니라, 쉼을 얻기 위해 우리 몸을 점령하려 합니다. 하지만 귀신이 함부로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합니다. 귀신은 강제로 우리 안에 침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이 무너지고 약해질 때, 그 틈을 노리고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속사람은 왜 무너지는 것일까요? 그 가장 큰 이유는 죄와 상처입니다.
죄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짓는 행위입니다. 도둑질, 거짓, 성적 타락, 살인과 같은 중대한 죄는 우리의 속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반면, 상처는 타인의 죄와 악함으로 인해 우리가 수동적으로 겪는 고통입니다. 갑작스런 이별, 학대, 배신, 실패, 실직, 스트레스 등은 우리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짐이 될 때 속사람에 깊은 금을 냅니다. 죄와 상처는 우리 속사람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 틈을 귀신은 알고 있습니다.
귀신은 하이에나와 같습니다. 상처 입은 영혼, 지쳐 있는 마음, 무너진 내면을 찾아 다니며 무리를 이루어 공격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졸개 귀신이 접근합니다. 그리고 상황을 정탐한 후, 더 크고 강한 무리들이 몰려듭니다. 음란한 귀신은 음란의 모습으로, 더러운 귀신은 더러운 방식으로, 공포의 귀신은 환청과 환상을 통해 그 사람의 정신과 감정을 교란합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매우 교묘하고 은밀하게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귀신은 거짓과 속임수의 달인입니다. 처음엔 유혹하고, 다음엔 위협합니다. 그리고 속사람이 무너지는 순간, 몸 안으로 침투합니다. 그 후에는 정신을 장악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정신이 깨어 있으면 반항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공포를 주어 항복을 이끌어냅니다. 결국, 귀신은 그 사람의 몸에 자기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귀신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절망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들린 사람의 속사람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은 간헐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냅니다. 우리가 그 신호를 듣고, 말씀으로 반응하고, 함께 울고 싸워줄 때 귀신의 권세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귀신들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 시작은 ‘상처’에서 비롯됩니다. 육신의 상처에는 세균이 몰려오고, 마음의 상처에는 귀신이 몰려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속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사랑과 돌봄으로 그들의 내면을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그들이 다시 거룩한 분노로 귀신을 거부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울고, 함께 싸워야 합니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 앞에 홀로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치유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걸어가셨고, 그들의 이름을 물으셨고, 그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그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누군가의 상처 앞에 멈춰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처는 고립될 때 죽음이 되지만, 함께할 때 치유의 통로가 됩니다.
상처받은 이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우리는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 사실은 수많은 상처와 고통이 누적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품은 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눈빛에는 어둠이 깃들어 있고, 표정에는 삶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그런 상처의 문을 통해 악한 영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귀신들림이라는 현상은 단지 극단적인 신비 현상이나 미신이 아니라, 상처받은 속사람이 완전히 무너지고 영적 저항력을 상실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입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할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보다 그 속에 감춰진 ‘깊은 상처’입니다. 이 상처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악한 영은 언제든지 틈을 타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상처에는 세균이 몰려오듯, 마음의 상처에는 귀신이 몰려옵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 자신의 속사람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지금 상처받은 채 방치된 감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죄의식, 수치심, 외로움, 버림받음, 억울함, 분노, 실패감과 같은 감정이 나도 모르게 내 속사람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상처들을 말씀으로, 기도로, 공동체의 사랑으로 치유받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나도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언제나 조용히 앉아 있지만 마음은 아파하는 지체들, 이유 없이 괴롭고 우울하다고 말하는 친구들, 반복적으로 이상한 생각에 시달린다고 고백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들은 지금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외침은 종종 큰소리가 아닌 침묵과 무기력으로 드러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관심하지 말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너 왜 그래?”가 아니라 “너 괜찮아?”라고 묻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가 아니라 “네가 힘들었구나”라고 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함께 기도하며, 속사람이 치유되고 회복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자기 힘으로 회복할 수 없습니다. 속사람이 연약한 이에게는, 믿음으로 강한 사람이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과 진리로 행동해야 합니다. 귀신들림에 대한 이해는 공포나 이단적 광신으로 흐르면 안 됩니다. 복음의 빛으로 분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며, 상처 입은 이들을 그리스도의 품 안에서 회복시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시고, 이름을 물으시고, 악한 영을 내쫓으시며, 그를 온전히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셨습니다. “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 알리라.” (막 5:19)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회복되었느냐? 그렇다면, 이제 회복이 필요한 자에게 다가가라.” 상처받은 이들을 향해 손을 내미십시오.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말씀으로 그들을 싸매고, 기도로 그들의 속사람을 세워주십시오.
그리할 때 귀신의 공격은 물러가고, 성령의 임재와 치유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2) 이 말씀처럼, 먼저 우리 영혼이 치유되며, 또 누군가의 영혼을 치유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상처받은 자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내미는 손 하나가,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손’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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