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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마태복음 - 동방에서 서쪽으로, 별을 따라 왕에게로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5.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마태복음 2:2,11)

마태복음 2장 1~12절은 익숙하면서도 우리가 쉽게 지나쳐 버리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극 속에서는 늘 마구간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등장하지만, 성경 본문은 훨씬 더 깊고 넓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탄생 에피소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에 임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계시의 장면입니다.

복음서들은 각기 다른 문을 통해 같은 방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마가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음성으로 시작하고, 누가는 성전과 가정이라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임한 하나님의 방문을 기록하며, 요한은 태초 이전의 영원 속으로 독자를 끌어올립니다. 마태는 족보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확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바로 동방박사들의 경배입니다.

본문을 천천히 읽다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그려 왔던 장면과 다른 사실들이 드러납니다. 동방박사들은 마구간이 아니라
‘집’에 있는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갓난아기가 아니라 ‘어린 아이’로 불립니다.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죽인 사실을 고려하면, 이 방문은 예수님의 탄생 직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차이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은 왜 이방의 박사들을, 그것도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예수님께로 이끄셨을까? 왜 이 장면을 마태는 굳이 기록했을까?

성경은 그들을
‘박사’, 헬라어로 ‘마고스’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당시 정치·종교·천문·영적 영역에 깊이 관여하던 인물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정 자문을 맡는 엘리트 집단이자, 시대의 징조를 해석한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바벨론의 박사들처럼, 이들은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역사와 권력의 변화를 읽으려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방문은 개인적 신앙 탐방이 아니라, 한 민족과 한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동방’은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은 동방에 있었고, 인간은 죄로 인해 그 동쪽으로 쫓겨났습니다. 이후 성경에서 동쪽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떠남과 멀어짐의 방향으로 등장합니다. 가인이 에덴 동쪽으로 떠났고,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도 동방으로 이동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은 언제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합니다. 성막의 문은 동쪽에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동편에서 서편으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상징하는 동선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동방박사’는 곧 하나님 밖에 있던 이방 세계를 대표합니다. 그들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사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인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소동케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왔지만, 곧바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이는 단순한 길 착오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전이 있는 곳이었지만, 정작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냐”고 묻는 장면은 아이러니합니다. 집 안의 보물을 집 밖 사람에게서 설명 들어야 하는 상황과도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됩니다. 성경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교회가 가장 많은 사회가 정작 복음의 본질에는 무감각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 밖에 있던 사람이 말씀 한 구절, 삶의 고난 하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찾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을 가리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곳이라고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변두리에서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베들레헴은 인간 재판자의 뺨을 칠 자, 곧 거짓 권력과 종교를 심판할 참된 왕이 오시는 곳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사실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별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자리까지 나아왔습니다.

그들이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단순한 예물이 아닙니다. 황금은 왕권을, 유향은 신성을, 몰약은 죽음을 암시합니다. 이방의 박사들은 자신들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 아이가 왕이요 하나님이시며 고난받을 메시아임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경배는 무릎을 꿇는 행위 이전에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동방에서 서쪽으로, 자기 세계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결단입니다.

이 이야기는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별을 연구하던 동방박사들인가, 말씀을 소유하고도 움직이지 않았던 예루살렘인가?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왔지만, 결국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베들레헴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왕을 만난 뒤에는 이전과 다른 길로 돌아갔습니다. 참된 경배는 언제나 삶의 경로를 바꿉니다.

마태는 이 장면을 통해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을 넘어 온 세상의 왕이시며, 그 앞에 모든 민족이 나아와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존재의 전환입니다.

동방을 비추던 별은 지금도 묻습니다. 우리는 그 빛을 따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