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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마태복음 - 지루한 족보에서 시작된 복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8.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니라.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태복음 1:1,16)

신약성경을 처음 펼치는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1장은 종종 시험대처럼 느껴집니다.
“낳고, 낳고”가 끝없이 이어지는 이름들의 나열입니다. 읽다 보면 금세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대충 넘어가도 되겠지.” 그러나 성경은 단 한 장도 헛되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1장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장입니다. 이 장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마태복음 전체를 이해하는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출발이 잘못되면, 복음 자체를 오해한 채 끝까지 달려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은 마태복음 1장 1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러나 바른성경은 원문의 뉘앙스를 더 분명히 드러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마태는 복음서를 시작하며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설명부터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선언이 왜 중요할까요? 그리고 왜 충격적이었을까요? 마태복음의 일차 독자는 유대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능력 있는 선지자 중 한 사람 정도로 여겼습니다(마 16:14). 심지어 그를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로 규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바로 그 예수를,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는 사람이 스스로 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기름 부으심으로만 세워지는 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이 한 문장은
유대인들에게 신학적 도전이자 정면 충돌이었습니다.

마태는 이 선언을
‘계보’라는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이 표현은 창세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톨레도트’, “이것은 누구의 내력이다”라는 공식적인 역사 선언과 연결됩니다. 모세는 창세기에서 이 톨레도트를 열 번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태초의 역사, 선택과 언약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톨레도트는 단순한 족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역사를 시작하신 지점을 알리는 표식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톨레도트 방식으로 기록했다는 것은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족보는 혈통 자랑이 아닙니다. 언약 성취의 역사인 것입니다.

원문에서 마태는 아브라함보다 다윗을 먼저 강조합니다. 이는 출발부터 다윗 언약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족보를 14대씩, 세 단락으로 정리합니다. 완전수 7의 두 배인 14, 그리고 완전수를 상징하는 3이라는 구조입니다. 역사적 정확성보다 계시적 메시지가 우선된 배열입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다윗이 있습니다. 마태는 다윗을 두 번 반복해 언급하고, 유독 그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입니다.

이 족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왕의 계보 끝에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가복음의 족보와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누가는 나단의 계보를 따라가지만, 마태는 철저히 왕의 계보, 솔로몬을 잇는 왕들의 계보를 따릅니다. 예수는 단지 경건한 교사가 아니라, 언약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이 족보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에게서.” 그리고 그 대상은 다섯 명의 여자입니다.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그리고 마리아, 이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약하고, 주변부에 있고, 때로는 부끄럽고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들입니다. 마태는 굳이 그들의 이름을 숨기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예를 들어 다말을 보면, 유다는 언약의 가문에 속했지만 언약의 정신은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다말은 버림받은 며느리였지만 하나님의 언약이 끊어지지 않아야 함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유다는 고백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다. 하나님의 언약은 혈통의 순결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로 이어집니다. 라합도,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인이었고, 사회적으로 낮은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마태는 밧세바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지웁니다. 그녀를 “다윗의 아내”라 부르지 않고 “우리아의 아내”라 부릅니다. 이는 다윗의 죄를 결코 미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영광의 열매가 아니라, 우리아의 희생 위에 세워진 언약의 증거입니다. 다윗 왕조는 업적의 왕조가 아닙니다. 죄를 담당하는 왕의 계보입니다. 그리고 그 계보의 끝에서
참된 왕이 오십니다. 권력을 쥔 왕이 아니라, 세상의 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왕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마태는 말합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예수는 다윗의 족보를 취하셨으나 인간의 혈통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오신 분입니다. 마리아는 설명되지 않는 오해와 수치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천함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주인공은 아브라함도, 다윗도, 그 어떤 인물도 아닙니다.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기름 부어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 족보는 불완전해 보여도 완전합니다. 인물이 빠져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자의 이름이 들어가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족보의 목적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태복음은 이 한 고백 위에서 전개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복음이십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라디아서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