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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요한일서 - 나에게 복음은 무엇인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7.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한일서 1:1~3)

우리는 너무 익숙해진 말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복음”, “은혜”, “예수님”, “구원”, “천국”, 교회 안에서는 매주 반복되고, 설교와 찬송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말들입니다. 문제는 이 말들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익숙해졌다는 것은 반드시 깊이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자주 들은 나머지, 더 이상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요한일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사도 요한은 복음을 설명하면서 ‘이해했다’, ‘배웠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들었다, 보았다, 만졌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닙니다. 복음이 그의 삶 안에서 얼마나 분명하고 실제적인 사건이었는지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말씀을 이렇게 많이 들어도 삶은 변하지 않을까?” “왜 믿는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복음이 나에게 실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내일 이 건물이 무너질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 말이 소문이거나 농담처럼 들린다면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국가 기관의 공식 발표이고, 실제로 이미 붕괴 조짐이 확인되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은 당장 짐을 싸고, 가족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날 것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의
‘실재성’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하나님의 심판, 이 세상의 끝, 천국과 영원한 생명,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실제 일어날 사건으로 믿어지고 있습니까? 만약 예수님의 재림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미래라면, 만약 이 세상이 반드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이 흔들리지 않는 진리라면, 우리는 지금처럼 세상에 마음을 묶고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음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살아 있는 복음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복음입니다. 죽은 복음은 지식으로만 존재합니다. 교리로는 정확하고, 말로는 옳지만, 삶을 다스리지 못하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사람을 위로할 수는 있어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종교는 될 수 있지만 생명은 되지 못합니다.

반면 살아 있는 복음은 다릅니다. 살아 있는 복음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하고, 선택을 바꾸게 하며,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합니다. 사도들이 왜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갔겠습니까? 그들이 용감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개념이 아니라 실재였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니라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고, 십자가는 먼 과거의 상징이 아니라 자기 삶을 규정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합시다.” 그러나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복음은 과연 너에게 무엇이냐?” 고 먼저 질문합니다. 내가 전하려는 복음이 정작 나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 복음은 아직 나에게 전달되지 않은 복음입니다. 어느 재판에서 한 판사가 목회자를 향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전도는 밖을 향해 외치는 함성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전도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전도의 출발점을 바로잡는 말입니다. 나 자신이 복음 앞에 서 있지 않다면, 내 삶이 복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 전도는 결국 교회 확장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말씀이 나를 붙드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해석하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를 붙들면 삶이 달라집니다. 말씀 앞에서 쉽게 타협하지 못합니다. 말씀 때문에 손해를 봐도 물러서지 않게 됩니다. 말씀 때문에 세상에서 이상한 사람처럼 보여도 괜찮아집니다. 이것이 요한이 말한
“보고, 듣고, 만진” 복음인 것입니다. 머리로만 아는 복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부딪히고, 경험하고, 붙들린 복음입니다.

나에게 복음은 무엇입니까? 위로가 필요할 때만 찾는 말입니까? 죄책감을 덜어주는 종교적 장치입니까? 아니면 내 삶 전체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실재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먼 옛날의 종교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나를 부끄럽게 하고, 감사하게 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사건이라면 그 복음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이렇게 우리를 세워 갑니다.
“복음을 안다고 말하기 전에, 복음이 너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보라.” 복음은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증거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