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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산상수훈 - 산 위에 있는 동네를 밝히는 빛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6)

사람들은 흔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들으면 이렇게 이해합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라. 모범적인 삶을 살아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라.”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상수훈을 율법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이해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새로운 도덕 강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이 더 이상 생명을 낳을 수 없음을 말씀하시고, 그 자리에서 하늘의 나라, 은혜의 실체를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성경에서 말하는 빛은 개념이나 태도가 아니라 인격입니다. 그 빛은 곧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무한하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유한한 인간은 무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한을 설명하지 않으셨고, 무한이 유한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성육신이며, 그 무한의 신비가 이 역사 속에 들어왔을 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
‘빛’뿐이었습니다. 빛은 설명이 아니라 무언가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 켜지는 순간, 설명하지 않아도 어둠이 드러납니다.

문제는 여기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만을 가리키던 그
‘빛’이라는 단어를, 이제 제자들에게 사용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여전히 우리는 연약하고, 육을 입고, 실패하고, 흔들리는데 말입니다. 이 말은 윤리적 격려가 아닙니다. 연합에 대한 선언입니다.

성도는 스스로 빛이 된 것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빛 안에 편입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부르고,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금 촛대라고 부릅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 촛대 자체가 빛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기름이 공급될 때만 불이 붙어 있게 됩니다. 그 기름이 바로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인 것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여기서 말하는 산은 아무 산이 아닙니다. 마태는 의도적으로 정관사를 붙여 ‘그 산’이라고 기록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 표현은 곧바로 시온산, 예루살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루살렘을 두 개로 말합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과 종살이의 성이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은혜와 자유의 성입니다.(갈 4:25~26)

산상수훈은 바로 옛 성전의 한복판에서,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빛이 비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숨겨졌던 것이 드러납니다. 성도의 존재는 이 세상 속에서 율법으로 포장된 종교성, 은혜인 척하는 인본주의, 생명 없는 질서를 조용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드러나게 합니다.

“세상”으로 번역된 단어는 코스모스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악한 세상’을 뜻하지 않습니다. 질서, 체계, 규범, 순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율법적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 선악과 이후 인간이 구축해 온 종교·도덕·가치의 체계입니다. 성도는 그 코스모스 한복판에서 다른 질서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성취로가 아닌 선물로, 행위가 아닌 은혜로, 자격이 아닌 연합으로, 그래서 성도의 빛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름은 위에서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스가랴의 환상에서 등대는 이렇게 설명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교회가 빛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빛을 숨기려 하지도 않습니다. 빛을 만들어내려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저 켜져 있을 뿐입니다.

빛은 드러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빛은 목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빛은 존재 자체로 목적을 이룹니다. 성도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부름받은 존재가 아니라, 이미 다른 나라에 속한 존재로 이 세상에 놓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빛을 비추는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결국 숨겨지지 않습니다. 가짜는 폭로되고, 참된 도성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증언의 자리 한복판에, 은혜로 불 붙여진 촛대처럼 오늘도 교회가 서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