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에베소서 1:7~9)
군대에는 ‘비밀’이라는 등급이 있습니다. 3급, 2급, 1급, 그 비밀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한 부대의 존망, 더 나아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정보이기에 철저히 관리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그 비밀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병사가 군 복무 시절, 작전 참모로부터 신형 대전차 자주포의 화력을 계산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포탄의 무게와 발사 속도, 전차 장갑의 두께를 계산하며 그 작전 참모는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쉿, 이건 당분간 1급 비밀이야.” 그때 그 병사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이게 그렇게까지 비밀인 일인가?’
그러나 그것은 그 병사가 전쟁과 무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전 참모에게는 국가의 존폐가 걸린 문제였고, 병사에게는 무의미한 수치였을 뿐입니다. 비밀은 중요해서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할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감추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은 결국 이런 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핵을 몇 기 보유했는지, 우라늄을 얼마나 농축했는지, 군사력의 수치가 어떠한지...,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역사를 이끄십니다. 필요하다면 막으시고, 필요하다면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의 비밀이 아니라 하늘의 비밀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것이라.” 여기서 말하는 ‘그 뜻의 비밀’은 막연한 신비가 아닙니다. 그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구원을 반복해서 ‘비밀’이라고 부릅니다. 왜일까요?
골로새서는 이 비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비밀의 내용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입니다. 문제는 그 비밀이 아무에게나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 비밀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셔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9절의 “알리셨으니”라는 표현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해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같은 말씀을 듣고도 어떤 이는 생명을 얻습니다.
이사야 6장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선지자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심지어 “그들이 깨닫고 돌아와 고침 받을까 하노라”고까지 하십니다. 이 말씀은 충격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그루터기, 거룩한 씨, 남은 자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복음은 허락된 자에게만 열리는 비밀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존재입니다. 죽은 자는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을 읽다가 인간의 노력으로 거듭나는 일은 없습니다. 성경을 수십 번 읽고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지성인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루소는 성경을 반복해서 읽고도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썼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위대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의 친구였지만 끝내 복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전혜린이라는 천재가 있습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았지만, 생의 의미를 끝내 붙잡지 못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통해 자아의 해방과 인간 가능성을 노래했지만, 그 방향은 결국 인간 안으로 침잠하는 길이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자력 구원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환상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토피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세울 수 없는 나라를 인간의 힘으로 세우려는 시도였습니다. 역사는 그것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수없이 증명해 왔습니다. 인간은 어제의 이상을 오늘의 폭력으로 바꾸는 존재입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왜 인간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참 의미는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감사하십니다.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말은 무지를 찬양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지혜를 내려놓는 겸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모릅니다.” 이 고백이 비밀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어 주십니다. 총명은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게 되는 능력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비밀이 열렸다면, 이제 우리의 책임이 시작됩니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말씀 없이 열심만 있으면, 그 열심은 곧 자기 의가 됩니다. 기도하고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반쪽짜리 기도입니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면, 비밀은 다시 흐릿해지게 됩니다.
성경은 인생의 잡다한 문제 해결서를 주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한 가지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수많은 천재들이 모르고 떠난 그 비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이제 그 비밀을 더 깊이 알고, 더 사랑하고, 더 감사하는 삶으로 응답하십시오. 그것이 비밀을 맡은 자의 마땅한 태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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