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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모세의 언약 - 복을 얻으려는 인간, 복이 되신 그리스도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명기 28:1)

사람은 누구나 복을 원합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손대는 것마다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은 언제나 설교의 단골 본문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 이 구절은 단순하고 명확해 보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따라오는 조건입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여기서 우리는 ‘지켜 행하면’까지만 읽고, ‘모든’이라는 단어는 슬그머니 넘어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애매하지 않습니다. 모든 명령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모세오경에 기록된 계명은 613가지입니다. 만일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복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면, 이 613가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지켜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선행을 참작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타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결국 저주 아래 놓인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의 구조 자체가 이를 증언합니다. 복의 선언은 14절까지지만, 저주의 선언은 무려 68절까지 이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분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이 인간을 살리기보다,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는 증거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복을 받았습니까? 역사가 말해 주듯,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반복해서 멸망과 포로를 경험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은 이미 랍비들의 해석과 인간의 전통으로 재가공된 율법이었습니다. 지킬 수 있도록 낮춘 율법, 스스로 의롭다고 느낄 수 있도록 타협한 율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참뜻을 밝히셨을 때, 그들의 실체는 드러났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이를 단 한 번도 온전히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지킨 것은 율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 앞에서, 율법을 지켰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과거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여전히 율법적 사고가 다른 옷을 입고 살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흔히 설교에서 인용되는
‘록펠러 이야기’입니다. 십일조를 하면,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 목회자에게 순종하면, 하나님이 부자로 만들어 주신다는 공식입니다. 이것은 구약 율법도 아니고, 복음도 아닌 성공 신앙의 매뉴얼입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성경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할 때입니다. 사람들은 묻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 적대적 합병, 헐값 매입, 수많은 기업의 파산과 실업자들, 이런 현실은 성공담에서 조용히 지워집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가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탐심을 세례 준 결과입니다.

야고보서 5장은 매우 불편한 말씀입니다. 정직하게 일하지 않고, 품꾼의 삯을 착취하여 쌓은 부는 복이 아니라 증거물이 됩니다. 그것은 언젠가 불처럼 사람의 살을 먹는 증언이 됩니다.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노동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생존을 우선하며 세계적인 부자가 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성경은 단순히
‘많이 가졌느냐’를 묻지 않습니다. 어떻게 가졌는가, 그리고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행위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 아래서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죄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참된 복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자본주의가 신앙을 삼켜 버린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누구를 믿고 있느냐?”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도 복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복은 조건의 결과가 아니라, 인격의 만남입니다. 율법을 지키려다 실패한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소망은,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계산이 아니라 믿음으로 삽니다. 그것이 십자가가 말하는 복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