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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2.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누가복음 20:25)

구원이란, 인간이 무엇을 더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이란, 인간이 무엇을 더 많이 소유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이란 저주받아 흩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자기 안의 공허를 채워 줄 유일한 분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시므온은 자신이 왜 불안했는지, 왜 평안을 누리지 못했는지, 왜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왔는지를 그 아기를 안는 순간 단번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의 문제는 로마가 아니었고, 그의 문제는 세상이 아니었으며, 그의 문제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자기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인 되지 않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살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죽어도 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죽음을 이겨내는 힘이 아니라, 죽어도 되는 자리로 옮겨지는 것, 그 자리에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지점에서, 오늘 본문인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정치와 종교의 분리, 세금 문제,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 질문은 단순히 동전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동전에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듯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어라.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너 자신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문제는 사람들이 돈은 가이사에게 잘 돌려주면서, 자기 자신은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시간, 자신의 열심, 자신의 도덕, 자신의 선행, 자신의 종교적 성취를 여전히 자기 소유로 움켜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자아 건축이며,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본질적인 반역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가이사의 세금 문제로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지만, 실상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것을 가이사처럼 사용하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증명하는 도구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너무 정확한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지금까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잘 바쳤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돌려드린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입을 다문 것입니다. 말문이 막힌 것이 아니라, 존재가 폭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안나도 달랐습니다. 그녀는 세상 남편을 버리고 어린양을 남편으로 맞이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참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들은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종교적 열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었음을 인정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누구의 것이냐?” 여전히 가이사의 논리로 자신을 관리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세상의 가치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시므온처럼, 안나처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돌려드린 자로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까?

복음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되돌려 놓는 사건입니다. 그 자리에만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