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에베소서 1:22~23)
우리는 흔히 교회를 떠올릴 때 두 가지 극단 사이를 오갑니다. 어떤 이는 교회를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공동체”로만 생각하고, 어떤 이는 교회를 “내가 다니는 이 건물, 이 조직”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선을 제시합니다. 교회는 우주적인 면과 지상적인 면, 이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닌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도 반드시 무너집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교회나…” (고전 10:32) 하나님 앞에서 교회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런데 교단도 하나가 아니고, 교파도 하나가 아니며, 유명한 대형 교회도 하나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뿐입니다.
우주적인 교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이미 잠든 성도들, 지금 살아 있는 성도들, 한국에 있는 성도들, 아프리카와 유럽에 있는 성도들, 이 모두가 한 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여기서 ‘교회’는 특정 지역이나 건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전 우주의 단 하나의 교회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쉽게 ‘내 교회’, ‘우리 교회’, ‘저 교회’로 쪼개지고, 결국 경쟁과 비교, 우열과 배타성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주 교회는 너무 크고,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교회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마태복음 18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회에게 말하고…” 여기서 교회는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즉, 지상 교회입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을 보면 교회는 언제나 이렇게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안디옥에 있는 교회, 에베소에 있는 교회, 고린도에 있는 교회입니다. 우주 교회는 보이지 않지만, 지상 교회는 보이고, 만질 수 있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우주 교회가 ‘정체성’이라면, 지상 교회는 ‘실행’입니다.
교회의 양면성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예는 몸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의 몸은 손, 발, 눈, 귀라는 구체적인 지체들로 나타납니다. “나는 전체 몸에 속해 있으니 손은 필요 없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손이 없으면 몸은 이 땅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주 교회는 ‘몸’이고, 지상 교회는 ‘손’과 ‘발’입니다. 손을 떠난 몸은 존재할 수 없고, 몸을 떠난 손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이것은 전국 어디에서나 동일한 우주적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서울 시민, 부산 시민, 대구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하고, 행정을 경험하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아니라 내가 속한 지역에서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서울시 행정에는 상관없다.” 이게 말이 될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우주 교회에 속해 있으니, 지상 교회는 필요 없다” 이것은 성경적인 말이 아닙니다.
“교회의 행정은 우주적인 것이 아니라 지상적인 것입니다.” 교회의 다스림, 돌봄, 책망, 양육, 교제는 모두 현실의 삶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누가 내 삶을 실제로 알고 권면할 수 있을까요? 누가 나의 신앙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함께 울어줄 수 있을까요? 인터넷 교회가 아닙니다.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교회도 아닙니다. 내가 몸을 두고 함께 살아가는 지상 교회입니다. 지상 교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있고, 실수가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교회 생활’을 배웁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우주 교회를 말하면서 지상 교회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상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우주 교회의 하나 됨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우주 교회만 강조하면 신앙은 관념이 되고, 책임은 사라집니다. 지상 교회만 강조하면 신앙은 폐쇄적이 되고, 자기 의는 커집니다. 성경은 이 둘을 나누지 말고 함께 붙들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하늘에서는 하나이고, 땅에서는 각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주 교회는 지상 교회를 통해 숨 쉬고, 지상 교회는 우주 교회를 통해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참여하는 그 작고 평범한 교회가 바로 우주적인 하나님의 교회의 실제적인 출현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교회 생활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내가 초대받은 자리임을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작은 지상 교회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온 우주의 교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고백이 바로 교회의 양면성을 아는 사람의 조용하지만 깊은 믿음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태복음 16:18)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마태복음 18:17)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고린도전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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