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아가 1:2)
아가서의 이 한 절은 우리 마음 깊은 곳을 터치 합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이름도, 배경도 생략된 채 등장한 여인의 이 간청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온 존재를 걸어버린 사랑의 고백입니다. 감추려 하지도, 숨기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온 마음을 다해 ‘그 분’을 향해 몸과 영혼을 열어젖힌 사랑의 외침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연애시가 아닙니다. 아가서는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집이 아니라,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진 가장 친밀하고 가장 순결한 영적 연합을 상징하는 사랑의 서사입니다. 여인의 입에서 터져나온 첫 마디가 “입맞추기를 원하니”인 것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뜨거워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이는 믿음의 고백을 넘어선, 사랑의 갈망이자 열정입니다.
입맞춤은 사랑의 가장 친밀한 표현입니다. 단순한 교제 이상의, 생명을 나누는 접촉입니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출 때, 그것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환영과 기쁨의 언약입니다. 연인이 서로의 입술을 맞출 때, 그것은 감정을 넘어 마음과 뜻, 삶 전체를 서로에게 내어주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주님께 입맞춤을 갈망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당신 없이는 나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내 혼, 내 영혼, 내 생명을 붙잡아 줄 단 하나의 존재로서 주님을 모시겠다는 전인격적 선언입니다.
본문의 주석적 묵상은 입맞춤의 다양한 종류를 언급합니다. 회심의 입맞춤, 용납의 입맞춤, 교제의 입맞춤, 환영의 입맞춤, 완성의 입맞춤 등. 이 각각은 성도가 예수님과 맺는 관계의 깊이에 따라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는 은혜의 연합입니다.
회심의 입맞춤은 우리가 처음 구주를 만났을 때 경험한, 죄 사함의 감격입니다. “내가 너를 용서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미소 속에서 우리는 쓰디쓴 죄의 기억을 눈물로 씻으며 달콤한 은혜를 맛보았습니다.
용납의 입맞춤은 믿음의 여정 속에서 넘어지고 실수할 때마다, 주님이 다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며 “나는 여전히 너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시는 은혜의 수락입니다.
교제의 입맞춤은 매일 주님의 말씀 속에서 그분과 눈을 맞추고, 기도 속에서 마음을 나누며 누리는 거룩한 친밀함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만나를 날마다 새롭게 내리시듯, 그분은 매일 새로운 입맞춤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인도하십니다.
환영의 입맞춤은 장차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때, 아버지께서 우리를 맞이하시며 부드럽게 입맞추시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완성의 입맞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모든 성도들이 영화롭게 되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그날, 하늘과 땅이 입맞추는 거룩한 통일의 날일 것입니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갈 때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저함이 없습니다. 떨림도, 망설임도 없습니다. 그녀는 아가서를 통해 말합니다. “그는 나의 사랑이요, 나는 그의 것이다.” 이는 법적 관계나 의무적 헌신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의 확신에서 나오는 담대함입니다. 주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한일서 4:18).
주님과의 관계가 의무감이나 종교적 경건으로만 채워진다면, 우리는 감히 “입맞추기를 원하니”라는 말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맛본 자, 은혜로 용납된 자는 압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감히 갈망해도 괜찮은, 아니 갈망해야만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은 기다릴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동적 기다림이 아닙니다. 아가서의 여인은 단지 기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사랑을 향해 다가가며,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향기를 구하며, 간청하며 외쳤습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우리의 영혼도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나와 교제하여 주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숨결이 내게 닿게 하소서. 말씀 가운데, 기도 가운데, 성령의 교통 속에, 그 입맞춤의 따스함을 다시 느끼게 하소서.”
이 세상은 점점 차가워지고, 사랑은 식어지고, 영혼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을 되새길 때마다, 다시 한번 입맞춤의 뜨거운 교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할 때이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이며,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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