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야훼의 지으신 것이니라.”(잠언 20:12)
이 말씀은 우리가 가진 ‘감각’이 단지 신체의 기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통로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눈이 열렸다고 해서 ‘볼 수 있다’고 할 수 없고, 귀가 있다고 해서 ‘들을 수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올리버 삭스의 책 『화성의 인류학자』에는 버질이라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시력을 잃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수술을 통해 다시 시력을 회복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눈을 뜨고도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사물의 움직임이나 색깔은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모여 이루는 ‘형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세상을 만지고 더듬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삭스는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전의 장님이었던 나는 죽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그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것입니다.”
버질은 단순히 시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태어나는 과정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옛 방식의 인식과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새 눈을 얻고도 여전히 ‘보지 못하는 자’로 남게 됩니다.
영적인 눈과 귀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눈은 열려 있는데 마음은 닫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귀는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기준, 내 생각, 내 감정이 필터가 되어 모든 것을 왜곡시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다르게 판단하고, 같은 말씀을 들어도 전혀 다른 길을 갑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잠언의 말씀은 이렇게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보고 듣는 것은 과연 누구의 눈이며, 누구의 귀로인가?"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세상을 판단하기보다 긍휼히 바라보는 눈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로 듣는다는 것은 비난과 소음 속에서도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귀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될 때, 세상을 향한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의 빛이 밝아집니다. 우리의 귀가 하나님께 향할 때, 사람의 말이 아닌 진리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결국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눈이 떠져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우리는 여전히 장님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눈이 열리면,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손길과 뜻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 저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제 눈을 열어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제 귀를 열어 주님의 음성만을 듣게 하소서. 옛사람의 눈과 귀는 죽고, 새롭게 태어난 영의 눈과 귀로 주를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야훼의 지으신 것이니라.” 오늘도 그분이 주신 눈과 귀로 세상을 보고, 그분의 마음으로 세상을 듣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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