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회에 함께하던 어느 무리 가운데, ‘미쳤다’는 소문이 돈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수행하고 기도하려 애썼지만, 사람들은 그를 꺼렸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며 멀리했고, 기도회 자리에서도 제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논란 끝에 한 번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조용히 기도가 시작되고 인도자가 하나님을 높이며 기도를 이어가던 그 순간, 갑자기 그 미쳤다는 사람이 황소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음메, 음메!”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 사람은 역시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러나 기도가 끝난 뒤, 누군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습니다.
“이보게, 하나님께 드리는 엄숙한 기도 시간에 짐승 흉내를 내다니, 그건 믿음 없는 행동 아닌가?”
그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난 단지 인도자가 한 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읊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황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난 황소 울음을 낸 거예요.”
그 말에 사람들은 의아하여 인도자에게 사실을 물었습니다. 인도자는 당황하며 고백했습니다. “맞소. 나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라고 기도를 읊으면서도 속으로는 농장을 떠올렸고, 또 황소 한 마리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소. 내가 겉으로는 경건한 말을 했지만, 속마음은 황소에게 가 있었소.”
이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깊이 찌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고 경건한 말이 입술에 오르내리지만, 정작 우리의 속마음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기도와 고백만 듣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아십니다.
기도란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겉과 속이 갈라진 채 하나님 앞에 서곤 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마음은 계산과 염려, 욕망과 집착 속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 정직한 영혼 앞에서 우리는 드러나고 맙니다. 그 는 사실 속마음을 꿰뚫어 본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외식, 즉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을 가장 엄중히 책망하셨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자기 이익을 좇는 자들, 입술로는 거룩을 말하지만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한 자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 진정으로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입술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속으로는 세상 염려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가? 나는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보기에는 황소 울음을 낸 미친 사람이 어리석어 보였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서는 그가 더 진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인도자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기도의 언어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 마음이 자꾸 세상으로 달아납니다. 욕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그런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런 고백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는 위대한 문장을 읊는 행사가 아니라,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는 일입니다. 속과 겉이 하나 되어 하나님께 향하는 자리, 그것이 진정한 기도회입니다.
황소 울음을 통해 드러난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경고합니다. 혹시 나는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나, 속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시며, 겉과 속이 일치하는 진실한 기도를 기다리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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