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말씀 묵상

민수기 - 거룩을 옮긴다는 것의 두려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7.

"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집계할지니,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 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민수기 4:1~3)

민수기 4장은 성막을 “
어떻게 옮길 것인가”를 말하는 장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장은 단순한 운송 매뉴얼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간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레위인들은 성막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마음대로 성막에 손을 대거나 바라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일은 질서와 구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고핫 자손, 게르손 자손, 므라리 자손에게 각각 다른 임무가 주어집니다. 누구는 성소 안의 기구를 메고, 누구는 휘장과 덮개를, 누구는 가장 무거운 널판과 기둥을 운반합니다. 모두가 중요하지만, 아무도 자기 방식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특히 고핫 자손에게 맡겨진 일은 가장 영광스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메는 것은 증거궤, 곧 언약궤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언약궤를 직접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먼저 들어가 휘장으로 가리고, 덮고, 채를 꿰어 준비해 주어야만 비로소 레위인들이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규례를 어기면 죽음이 따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거룩은 친숙함으로 다룰 수 없습니다. 성경은 성물을 만지거나 보면 죽는다고 반복해서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잔인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물 자체가 아니라, 그 성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입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를 “
들여다보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호기심이었을까요, 경외 없는 친숙함이었을까요. 그들은 언약궤의 뚜껑을 열고 안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율법의 돌판이었습니다.

그 율법은 인간을 살리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죄인을 정죄하는 기준입니다. 그 율법 위에 덮여 있던 것이 속죄소였습니다. 피가 뿌려지지 않으면 그 율법은 곧 심판이 됩니다. 그런데 피 없는 시선으로, 은혜 없는 호기심으로 그 율법을 마주했을 때,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하자 언약궤를 전장으로 끌고 옵니다. 마치 언약궤가 있으면 자동으로 승리할 것처럼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삼만 명이 죽고, 언약궤마저 빼앗겼습니다.

언약궤는 주술적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부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하나님을 “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이용하여 우리의 목적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객이 전도된 신앙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약궤는 인간의 보호 없이도 스스로 블레셋을 심판하고 돌아옵니다. 다곤 신상이 엎드러지고, 전염병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언약궤를 옮길 때도 같은 실수가 반복됩니다. 수레에 싣고, 군대를 동원하고, 장엄하게 모셔가려 합니다. 그러나 소가 뛰고, 웃사가 손을 대는 순간 그는 즉사합니다. 웃사는 선한 의도로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선한 의도는 순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
잘해 보라”가 아니라 “말씀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인간의 열심으로 보완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분노한 이유는 단순한 슬픔이 아닙니다. 자신이 준비한 방식, 자신이 그린 하나님의 영광이 거절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을 호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압살롬의 반역 속에서 다윗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도망가는 길에서 언약궤를 따라 나오려는 제사장들에게 다윗은 말합니다. “
언약궤를 성으로 도로 메고 가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다시 보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주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하시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내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에 나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만져도 죽고, 들여다봐도 죽던 그 거룩을 한 몸에 짊어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율법 아래 오셨고, 속죄의 피를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더 이상 속죄소의 뚜껑을 열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피가 이미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내 산의 두려움이 아니라,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의 피 뿌림 안에 거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룩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은 거룩 앞에 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기준은 여전히 그 피입니다.

민수기 4장은 묻습니다. “
너는 거룩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익숙함으로, 열심으로, 성공의 도구로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룩은 옮겨질 수 있지만, 조종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 앞에 설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완성된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