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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민수기 - 진영 밖으로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냈으니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민수기 5:1~4)

민수기 5장은 다소 낯설고 불편한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나병 환자, 유출증이 있는 자,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모두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는 말씀입니다. 남녀를 가리지 말고, 예외도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합니다. “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거룩해야 합니다. 부정함이란 단순히 위생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생명의 영역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부정함의 궁극적인 뿌리는 죽음이며,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나병이나 유출증이 결국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듯, 주검과의 접촉이 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온 죽음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자를 미워하여 내쫓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명령은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한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해 출애굽을 이루셨고, 그 임재를 지키기 위해 진영의 거룩함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부정한 자는 진영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레위기를 보면, 그가 정결하게 되었을 때 제사장이 이를 확인하고 다시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정결해지는가입니다. 민수기 19장은 그 길을 보여줍니다.

멍에 메지 않은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끌고 가 잡고, 그 전체를 태워 재를 만듭니다.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함께 태워 만든 이 재는 ‘
부정을 씻는 물’이 됩니다. 부정한 자는 이 물로 씻음을 받아야만 다시 진영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정결하게 하는 제물은 진영 안이 아니라 진영 밖에서 죽습니다. 부정한 자가 나간 그 자리에서, 정결케 하는 희생이 이루어집니다.

민수기 15장에서 안식일에 나무를 하던 사람이 진영 밖에서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은 매우 엄중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참 안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은 단순한 노동 문제가 아니라, 자기 죽음으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태도를 상징합니다.

문제는 이 율법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으로 보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율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규례를 철저히 지킨다고 자부했지만,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왜곡된 안식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날도 안식일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살리신 예수님을 죽이려 한 자들이 바로 율법을 지킨다고 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
일하고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성막에서 레위인들이 맡은 사명과 동일합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고, 레위인들은 그 거룩함을 지키며 정함과 부정함을 구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에덴에서 실패했듯, 이스라엘도 성막과 성전을 지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성전은 도적의 소굴이 되었고, 하나님이 거하실 집은 인간의 욕망과 종교적 위선으로 더럽혀졌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성전을 향해 “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삼 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곧 자기 자신, 참 성전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참된 성전을 누가 부정하다고 판단합니까? 제사장들, 레위인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백성의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영 안에 있다고 믿었고, 예수님을 진영 밖으로 몰아내어 죽였습니다. 부정한 자들이 정결하신 분을 쫓아낸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은 분명히 말합니다. 속죄 제물은 영문 밖에서 불사르고, 예수님도 자기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고 말입니다. 붉은 암송아지, 아사셀 염소, 속죄 제물은 모두 영문 밖에서 죽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오늘날 많은 교회는 영문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문 안에서 더 크고, 더 안전하고, 더 화려한 바벨탑을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성도는 이 땅에서 나그네이며 외국인입니다. 이 말은 세상일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을 붙들고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는 벌벌 떨면서,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불사르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에는 무관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영문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계신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리보다, 십자가가 있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참된 정결을 입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