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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말씀 묵상

믿음으로 옮겨진 사람, 에녹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5~6)

어느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권사님이 장례 예배를 마친 뒤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
목사님, 저는 죽는 게 무서워요." 이미 평생 교회를 다닌 분이었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었고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병원 진단서를 받아들고 죽음을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온 뒤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가 에녹 이야기를 만나면 은근히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
나도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정말 성경이 우리에게 그런 부러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옮겨졌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며 늘 마지막 장면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장면보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에녹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올라간 신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상에 대하여 죽어가는 한 사람의 긴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던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논과 밭이었습니다. 날씨가 어떠냐, 벼가 얼마나 자랐느냐, 올해 수확이 얼마나 되느냐가 그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병을 얻었습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
길어야 몇 달입니다." 그날 이후 그 노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중요했던 논과 밭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창고에 쌓아 둔 쌀도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자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했다." "고맙다." "사랑한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입니다.

에녹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창세기는 에녹이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합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에녹은 아들의 출생과 함께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
이 아이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 그날부터 에녹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집을 짓고, 밭을 사고, 사업을 하고, 성공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에녹은 알았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구나."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높은 산에 올라가 보니 그 마을 밖에 훨씬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마을 안의 경쟁이 우습게 보입니다. 누가 더 큰 집을 가졌는지, 누가 더 유명한 사람인지, 누가 더 많은 칭찬을 받는지, 그것들이 더 이상 절대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더 큰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평탄한 삶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동행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손을 잡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손을 잡고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데 있습니다.

어느 젊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좋은 직장에 다녔습니다. 늘 바빴습니다. 아이들과 놀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야지."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미래도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집에 머물며 뜻밖의 경험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고, 산책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생긴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말했습니다. "직장을 잃은 것이 당시에는 재앙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잃어버린 가족을 돌려주셨습니다."

그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성공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해 조금 죽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조금 살아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성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런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하십니다. 돈을 붙들면 돈이 흔들리고, 명예를 붙들면 명예가 흔들리고, 사람을 붙들면 사람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
그것이 네 생명이 아니다." 처음에는 아픕니다. 정말 아픕니다. 사람의 인정이 끊어질 때 아프고, 관계가 무너질 때 아프고, 계획이 실패할 때 아프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아픕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됩니다. "이것들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나님이 계셨구나." 그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지금도 내 삶을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원하지 않는 일도, 견디기 힘든 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에녹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에녹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에녹이 마지막에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삼백 년 동안 세상에서 떠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기대에서 떠나고, 세상의 자랑에서 떠나고, 세상의 가치에서 떠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은 그 긴 여정의 완성일 뿐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 모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예상치 못한 질병, 실망스러운 인간관계, 끝나지 않는 고난, 그 모든 것이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로 옮기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가 너의 집이 아니다." "조금만 더 걸어라." "나는 네가 돌아갈 본향을 준비해 두었다."

에녹은 그 음성을 듣고 걸어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모든 성도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인생은 세상에 정착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향을 향해 돌아가는 긴 순례의 이야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