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창세기 7:23)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기식하는 것들을 다 쓸어버리시겠다는 공포와 함께 노아와 그의 식구들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그 방주 안으로 넣으셔서 살려 내시겠다는 언약을 하셨습니다.
노아는 그 언약을 믿고 그 때부터 방주를 지었습니다. 따라서 노아에게 있어서 방주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방주를 짓고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노아가 그 언약 안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방주라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자들만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언약이라는 단어는 ‘약속과 계획’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 안에 들어 있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을 의로운 자라 부르고, 거룩한 자라 부르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 마음대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어서 ‘이러한 종류는 정결하다고 해라. 그리고 저러한 짐승들은 부정한 짐승이라 해라’고 하나님 마음대로 정하신 것처럼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따라 그냥 정결한 자, 거룩한 자, 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지속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롬9:11~13)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이 십자가로 말미암은 은혜의 선택, 무조건적인 선택이 방주로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는 자기가 뭘 잘해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의인이 된 것이고 완전한 자로 간주가 된 것입니다. 그 은혜의 교리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노아와 일곱 식구가 방주 안으로, 다른 말로 언약 안으로 구별되어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쓰레기처럼 더럽게 패역하고 강포하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를 부은 어떤 자들을 구별해서 건져 내시는 것을 가리켜 ‘의’라 하고, ‘거룩’이라하는 것이며 ‘완전한 자’라 하는 것입니다. ‘의’나 ‘거룩’이나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함’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 구별하셔서 방주에 넣으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명령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 하라’는 말씀에 겁을 먹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꼴을 보면 절대 난 온전함에 이를 수 없는 자인데 어떻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시켜서 언약 안에 집어넣은 자들은 노아처럼 당세에 완전한 자로 여겨 주시는 것이고 반드시 새로운 몸 안에서 그렇게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운명적으로, 신분적으로, 영적으로 하나님처럼 온전한 분들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방주 속에, 언약 속에 들어와 있는 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 속에 들어 있던 노아가 방주를 짓고 방주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함으로 그가 하나님의 언약 속에 들어 있던 자라는 것을 증명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속에 들어 있는 자라는 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서도 분명 세상과 구별되는 어떤 증거가 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고 방주로 들어가는 노아의 그림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어야 합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노아가 방주 속으로 들어간 것은 비가 아직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 속으로 들어가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비가 안 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바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방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객관적인 정황으로 볼 때 충분히 내가 바보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을 행위로 보여주는 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날 방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도 똑같이 이 세상에 믿음을 보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나의 죄를 속하시고 나를 구원하셨으며 이제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방주를 탄 이 시대의 노아들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마치 나에게는 보이는 자처럼, 분명히 내 안에 살아계신 것처럼 믿음으로 사는 모습이 우리에게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분명 완성이 되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 세대에서 방주를 짓고 방주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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