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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속으로

삼손 - 죄인과 함께 죽으신 메시아의 그림자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29.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 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 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 아비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 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사사기 16:1-4, 28~31)

물처럼 흘러간 사사 시대의 한복판에서 삼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힘센 남자, 비극적 인물,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간 영웅으로 단순히 기록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그 겉모습 너머, 복음의 그림자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삼손의 삶과 죽음, 들릴라와의 관계, 성문을 뽑은 사건, 마지막 기도와 죽음은 단순한 역사나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깊게 비추는 모형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삼손은 기생 들릴라와의 연합으로 인해 수많은 설교에서
‘육신의 정욕에 넘어간 불쌍한 사사’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사사기 16장을 천천히 묵상해보면, 오히려 그는 죄인과 하나 되심으로 죽으시는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예언적 인물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
들어가다'와 '기생'은 단순한 육체적 관계가 아닌, 혼합과 연합, 곧 하나 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복음의 본질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세상과 연합하셨고, 그 연합을 끊어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으셨습니다.

삼손이 들릴라 품 안에서 무너지고, 눈이 뽑히고, 멸시 속에서 맷돌을 돌리는 장면은 마치 예수님께서 조롱과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삼손은 그와 연합된 음녀와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배신한 인류와 함께, 인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가사 성의 문을 뽑아 헤브론으로 메고 올라간 삼손의 행동은 단순한 괴력의 표현이 아닙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그 언약이 실현되는 장면입니다.

가사는 블레셋의 주요 도시였고,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이 묻힌 땅이었습니다. 삼손은 대적의 권세를 꺾고, 믿음의 유산이 있는 땅으로 그 문을 옮긴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사건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음부의 문을 부수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메시아입니다.

삼손의 마지막 장면은 사사기의 절정입니다. 그는 성전 기둥을 붙잡고, 스스로의 목숨을 대가로 블레셋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죽음을 택합니다. 그가 죽으며 외친 기도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죽는 삼손의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신 예수님의 기도와 오버랩됩니다. 삼손은 기둥을 무너뜨려 성전을 허물었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성전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삼손은 죽음으로 더 많은 대적을 무너뜨렸고, 예수님은 죽음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 죽음을 통해 새 생명의 문이 열렸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물을 붓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한 장면은 하나님의 극적인 은혜와 자비를 보여줍니다. 물은 불을 막는 장애물이지만, 하나님은 그 제물 위에 불을 내리셨습니다.

이는 삼손이 죽음을 선택함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불같은 구속을 예고하는 장면과 평행합니다. 불가능한 자들, 죄의 깊은 곳에 빠진 이들을 위한 희생의 제사가 바로 복음입니다.

삼손은 세례 요한처럼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입니다. 마가복음 1장과 사사기 13장은 모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누군가의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부터 시작됨을 말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이방 땅에서 고난받으나 결국 그들을 살리는 자가 되었고, 모세는 그 뒤를 이어 출애굽의 실체를 이루는 자였습니다. 이 둘은 십자가를 예표하는 이중적 모형입니다. 삼손 역시 그렇게 ‘
먼저’ 죽는 자입니다. 실패한 영웅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미리 보여준 인물입니다.

삼손은 우리의 눈에 ‘
성적 타락자, 실패한 사사’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영웅 명단에 올려 놓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결국,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예표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닌, 죽음을 이긴 메시아의 희생 안에서만 진짜 승리가 일어난다는 복음의 진리를 삼손은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인생, 들릴라 품에서 눈 뽑힌 실패자를 통해 예수님의 그림자를 조각하십니다.
"무죄한 자의 죽음으로 죄인이 산다. 하나님의 승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메시아의 희생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진리가 삼손의 죽음을 통해 다시 선포됩니다. 우리의 실패, 넘어짐, 연약함도 복음 안에서 다시 쓰일 수 있습니다. 삼손처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살게 되는 구속의 길이 우리가 오늘도 묵상해야 할 복음의 깊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