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우리는 서로를 처음 보는 얼굴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으로 만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만남은 설명할 수 없는 낯섦과 동시에 깊은 친숙함을 안겨 줍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간의 시간을 엮으시고, 영원을 향해 흐르는 하나님의 스토리 속에 우리를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누군가가 전혀 새로운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 내 삶에 나타날 때에도,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알아보고, 이상한 울림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감지합니다.
때로는 몇 세기라도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길고 긴 세대의 흐름, 무수한 사건과 역사적 격변 속에서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 없는 이들이 살다 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영혼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떤 이들의 발자취를 느낍니다. 마치 지상의 모래알과 하늘의 별의 먼지가 충돌과 생성으로 우주를 만들어 가듯, 하나님은 각 세대의 삶과 사랑, 고통과 희망을 연결해 큰 맥을 이루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존재와 누군가의 존재가 서로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믿음으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서로를 향해 은밀히 공명하는 ‘영적 파동’입니다.
이 땅의 생은 그렇게 서로 얽히고 흔들리며, 오랜 시간 속에서 파동처럼 이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떠나갈 때, 그 모든 파동은 무엇을 남기는가? 우리는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손으로 붙잡았던 소유들은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명예도, 피 흘려 얻은 성취도, 심지어 기억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이 땅의 흔적 속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끝까지 남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새겨진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 사랑은 감정의 파동을 넘어, 하나님의 본성과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실재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영혼에 흔적으로 남아 다음 생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져가는 것은 우리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 사랑이 우리의 존재를 영원으로 이끄는 유일한 빛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받은 순간들, 용서했던 장면들, 눈물로 끌어안았던 연약함들, 기꺼이 낮아졌던 시간들…. 이런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랑의 흔적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얼굴과 이름들이며, 새로운 생에서 우리가 품게 될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영원의 사랑으로 빚어진 존재입니다. 우리의 생은 흩어지는 먼지 같지만, 그 속에 하나님께서 심어두신 사랑은 절대적이고 불멸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작은 파동처럼 울립니다. 누군가를 향한 온유함, 기도하는 마음, 이해하려는 결심, 용서하려는 의지…. 그 모든 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우리 영혼이 반응하는 울림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을 마주할 때, 그 사랑이 우리의 진짜 이름이 될 것입니다.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 있으니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린도후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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