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마가복음 1:41)
우리는 병을 두려워합니다. 고통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병은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병을 단순한 불행이나 우연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병은 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통로이며, 우리 영혼의 상태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병은 영적 세계와 연결된 깊은 주제이며, 성도는 이를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병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병과 죄는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롬 5:12). 죄가 세상에 들어올 때 병과 죽음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병은 죄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개인의 병이 곧바로 특정 죄 때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병은 자연적인 섭리 속에서 오기도 하고, 어떤 질병은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병을 만날 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내 마음에 감추어 둔 죄는 없는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았는가?”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빚은 없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 적은 없는가?” 죄가 병을 직접적으로 불러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를 고백하는 순간 기이하게 병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결국 성도는 병이 찾아올 때 먼저 용서를 구하고, 그 다음에 치유를 구해야 합니다. 병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부르심의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병을 이해할 때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죄만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과 연약함도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죄인에게 복음을 전하셨을 뿐만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셨고, 약한 자를 세우셨고, 귀신 들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죄를 용서하시고, 죄의 결과인 병을 다스리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죄는 십자가에서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은 “제한적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죄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끝을 낸 사건입니다. 그러나 병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병은 종말의 완전한 회복이 올 때까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삶 속에서 병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십자가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아직 남겨진 싸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병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도가 병에 걸릴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의학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병이 찾아왔을 때 성도는 이렇게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불순종한 것은 없는가? 하나님이 맡기신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갚아야 할 빚은 없는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내 몸을 혹사시키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병은 단지 “징계”가 아니라 “연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더 부드럽고, 더 낮아지고, 더 순종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시기 위해 병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병은 때때로 사탄의 공격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과 길을 동행해본 사람은 그 영적 배후를 민감하게 감지하게 됩니다. 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병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병이 우리의 교만을 부수기도 하고, 우리의 조급함을 가라앉히기도 하며, 우리가 잊고 살던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하기도 합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치유에 관한 놀라운 세 가지 진리가 나타납니다. 첫번째는 주님의 능력을 “네가 믿느냐?”입니다. 문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치유는 내 의지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두번째는 주님의 의지인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입니다. 하나님은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향해 손을 내미시는 분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세번째는 주님의 행동인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기대가 아닙니다. 믿음은 이미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치유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믿음은 기대가 아니라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미 일을 행하기 시작하셨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것을 보게 하는 영의 눈입니다.
병은 성도의 삶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병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죄를 돌아보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게 합니다. 병을 두려워하기보다 병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병 속에서 하나님을 배우는 것은 믿음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고, 원하시고, 이미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붙들며 병이라는 좁은 길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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