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로마서 1:8)
사람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겉모습, 결과, 성과, 숫자, 능력,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묻고, “얼마나 드러났는가”를 기준 삼아 신앙을 재단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진짜가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됨이로다.”(롬 1:8) 이 말은 로마 교회가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유명한 설교자를 배출했다는 말도 아니고, 거대한 건물을 세웠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울은 단 하나를 말합니다. “너희 믿음이 보였다.”
감출 수 없는 것은 결국 드러납니다. 동양의학에는 ‘장상학(藏象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속 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상태는 반드시 겉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속에 큰 기쁨이 있으면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슬픔이 깊으면 말수가 줄고 어깨가 처집니다. 분노가 쌓이면 목소리가 날카로워지고 숨이 가빠집니다. 속은 숨길 수 있어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낌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도 같은 원리를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성도들의 삶이라는 ‘현장’ 속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냐.”(눅 12:56) 하늘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데, 사람은 자기 삶에만 몰두한 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마치 기차가 달려오고 있는데도 이어폰을 낀 채 철길 위를 걷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향기’입니다. 로마 교회의 믿음은 전파되었습니다. 이 말은 누군가 일부러 광고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은 원래 전파하려 애쓰지 않아도 퍼집니다. 갓 구운 빵 냄새는 “여기 빵집 있습니다”라고 외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골목을 채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붙들린 삶은 설명하지 않아도 드러납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핍박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예배드렸고, 조심스럽게 모였으며, 때로는 신앙 때문에 생명까지 위협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그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가?” “도대체 무엇이 저들을 버티게 하는가?”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믿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믿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을 능력으로 오해합니다. 기도 응답, 문제 해결, 기적 체험, 그런 것이 있으면 믿음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 겨자씨는 너무 작아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눈에 띄는 힘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자기부인으로 설명하십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내가 해냈다”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로 끝나는 삶입니다. 어린아이가 그렇습니다. 아이는 자기 인생을 설계하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그것이 약함이 아니라, 생존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가리켜 “천국의 방식”이라 부르십니다.
교회는 ‘큰 자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묻습니다. “누가 큽니까?” “천국에서는 누가 높은 자입니까?” 예수님은 그 질문 앞에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교회는 강한 자들의 연합체가 아닙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의 클럽도 아닙니다.
교회는 자기 부인이 강요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공로가 의미 없고, 배경이 힘을 잃으며, 조건이 무너집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반 세겔’짜리 속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의 믿음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드러난 것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자기 주장보다 하나님께 맡겨진 순응이었으며, 성공보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인내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보며 감사를 교회에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올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내 삶에서 전파되는 것은 나의 신앙인가, 나의 욕망인가? 믿음은 설명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삶에서 새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니고, 주님이 하셨습니다.” 그 고백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조용한 향기로 퍼져가기를
묵상하며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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