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로마서 1:7)
우리는 종종 인사처럼 이 말을 주고받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에게는 묻지 않습니다. 나는 정말 평안한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성경이 말하는 평강을 누리고 있는가?
얼마 전, 오래전부터 말씀을 들어 오던 한 성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교회를 다녔고, 스스로를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쟁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다시 들으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예수와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같은 설교를 듣고 있다는 한 목회자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교회를 찾고 싶다고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그런 설교를 교회에서 하면 교인들이 다 떠납니다.” 그래서 설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십자가와 자기부인의 복음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교회에서는 차마 그렇게 전하지 못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매주 그런 설교를 듣고 있는 성도들을 “특이한 사람들”이라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일까? 매주 예배당에 앉아 듣는 말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십자가를 지라, 잘했다고 생각한 선행조차 죄일 수 있으니 돌아보라, 망하는 길이 오히려 바른 길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상하고, 자존심이 무너지고, 현실의 희망마저 흔들리는 말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진짜 은혜가 무엇인지, 진짜 평강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평강은 상황이 아니라 관계에서 옵니다. 로마 교회는 평안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핍박과 위협 속에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말합니다. 이 평강은 현실이 좋아져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원문을 보면, 바울은 평강을 “기원”하기보다 선포합니다. 이미 그들에게 주어진 사실로 말합니다.
그 평강은 어디에서 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은혜와 평강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묶여 있습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평안해질 수 있다.” “형편이 나아지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문제 한가운데서도 평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평강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쉼은 짐이 사라져서 오는 쉼이 아닙니다. 짐은 그대로 있는데, 그 짐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에 갇혀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가장 먼저 하신 말도 이것이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 평강은 십자가를 통과한 평강이었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누리는 평강은 예수님 쪽에서 이미 치러진 대가의 결과입니다. 그분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전쟁을 끝내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평강을 받은 자들의 삶은 더 험해집니다.
히브리서가 증언하듯, 믿음의 사람들은 편안한 삶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평강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평강은 이 땅의 안락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세상의 것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평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과 분쟁을 일으키는 평강입니다. 평강이 임하면 전쟁이 시작됩니다.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을 고백한 직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알과 아세라 단을 헐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늘의 평강은 세상 우상들과의 전쟁을 동반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 마음을 빼앗던 것들, 평안을 준다고 착각했던 것들과의 결별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인생에는 털림이 있고, 잃어버림이 있고, 좌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벌이 아니라 은혜의 과정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만 집중시키기 위한 사랑의 간섭입니다.
정말 평안하세요? 조금 가난해지면 어떻습니까. 병이 들면 어떻습니까. 잃을 것이 생기면 어떻습니까. 그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목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진짜 평강은 내 인생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이 죄인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그 경이로운 사실 앞에서 숨을 고르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묻습니다. 정말 평안하세요? 세상이 주는 가짜 평강 말고,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그 평강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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