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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상급의 오해와 복음적 상급의 의미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7.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로마서 1:3~6)

인간의 언어는 그 자체 안에 이미 법적 구조를 함의합니다. 단어와 문장은 필연적으로 ‘명령-수행’의 구조를 띠고, ‘해야 한다–하지 말아야 한다’를 내포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문자층에서만 읽으면, 성경은 즉시 인간을 향한 도덕규범의 책, 윤리적 지침서, 성화 매뉴얼로 축소됩니다.

문자 층은 도덕·윤리·행위 규범이고, 그 아래 숨겨진 층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루소, 간디, 등은 성경을 ‘
위대한 윤리서’ 정도로만 읽는 이들은 바로 이 문자 층에 머무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아래 “나를 위하여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면 성경은 즉시 짐이 되고, 부담이 되고, 지켜야 할 규칙의 목록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을 얼마나 들었는가에 따라 ‘상급’과 ‘’의 차등이 결정된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자주의가 불러오는 필연적 착각입니다.

성경은 법전이 아니라 언약의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도덕을 가르치려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록한 책입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입니다. 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하나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예수 안에서, 예수의 피로 내 백성을 건져내어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자로 만들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게 하겠다.

그 언약의 기원은 에베소서 1장에 기록된 창세 전 언약입니다. 창조 이전,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사이에서 맺어진 죽음의 언약입니다. 히브리서 9장은 그 언약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언약(디아데케)은 유언이다. 유언은 반드시 유언자가 죽어야 효력이 생긴다. 그래서 첫 언약(구약)도 피로 세워졌고, 새 언약(예수 그리스도의 피)도 피로 완성된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언약 성취의 필연입니다. 언약의 당사자가 죽어야 언약이 효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이”(요 1:45),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히 10:7),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 18:31),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 (눅 24:27), “모세·선지자·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성경은 예수의 이야기이며, 예수의 십자가를 말하며, 예수의 언약 성취를 선포하는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은 다만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가 로마서 1장 5절의 중심을 보게 됩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믿어 순종케 하나니” 순종은 내 마음에서 나온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그분의 언약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이 성도를 사용하시는 방식입니다.

왜 인본주의는 복음을 미워하는가? 인본주의는 성경의 이 구조를 수긍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의 자존심을 그대로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흙인가? 왜 우리는 소품인가? 왜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무가치한가? 왜 우리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가?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함이라.” 강함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며, 피동체이며, 절대 의존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언약의 주체가 아니라 언약의 열매를 받는 존재입니다.

문자주의는 왜 결국 ‘
상급’을 찾게 되는가? 문자주의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지 못하고 “내가 해야 할 일”만을 끄집어냅니다. 그래서 인간의 양심은 선악과 이후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려는 속성을 가집니다. 그 양심이 ‘선행’을 만들어냅니다. 그 선행을 하나님 앞에 들이밀고 보상을 기대합니다. 결국 “나는 했으니 상을 주셔야 합니다”라는 구조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법전으로 읽은 자들이 상급론에 집착하는 구조입니다.

부르심을 입어 순종케 된 자들의 ‘
상급’은 무엇인가? 로마서 1장 5~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상급은 행위의 보상이 아닙니다. 상급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것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속으로 끌려 들어간 것 자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 있게 된 것 자체입니다. 그분의 것이 되는 것보다 더 큰 상급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