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마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3.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로마서 1:6~7)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마음을 겁니다. 돈, 성취, 인정,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지켜 줄 것이라 믿고, 우리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좋은 영화 한 편은 우리가 직접 살아 보지 못한 인생을 대신 살아 보게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낯선 인물의 삶을 보면서도, 어느새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겉보기엔 완벽한 사랑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 자상한 남편, 사랑스러운 아이, 그러나 그 남편의 정체는,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 다가온 사람이 아니라 결국 그녀를 죽이기 위해 잠입한 존재였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을,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영화 속 인물에게만 던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던져진 질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그것들, 돈, 안정, 성공, 자존감, 자아의 확장, 정말로 우리를 살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를 죽이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한 또 다른 것은 아닐까?

성경은 오래전부터 말해 왔습니다. 우리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가장 깊은 근심으로 몰아넣는다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를 지키려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고, 문제는 돈이나 자아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말세의 특징은 이것입니다. “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우리는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을 사랑하고, 신뢰해서는 안 될 것을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살려 줄 것이라 착각합니다.

사실 가장 위험한 사랑의 대상은 돈보다도 ‘
’입니다. 나의 안전, 나의 체면, 나의 가치, 나의 성공,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자기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삶이 오히려 자기 파멸로 가는 길이라는 역설입니다.

성경의 세계에서는 강함이 미덕이 아닙니다. 오히려 날마다 죽는 삶, 약함을 드러내는 삶이 복음의 자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고,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 비유는 “
네가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네가 사랑받은 방식이 이것이다”**라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호합니다.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우리는 사랑의 주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원수된 우리를 이웃 삼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명령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라 이미 완성된 현실을 바라보라는 초대인 것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난 존재입니다. 흙은 땅을 사랑합니다. 땅에 속한 것을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는 그 흙을 하늘의 존재로 바꿔 버립니다. 성도란 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면서도, 이미 하늘에 속한 자로 불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이 땅에 남겨 두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얼마나 땅을 사랑하는지를 뼈저리게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경험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배우게 됩니다.

신랑의 사랑으로만 사는 삶을 아가서가 이 진리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검고 못생긴 노예 여인 술람미,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랑은 그녀를 선택하고 사랑합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앞에서 외모와 행위로 자랑하던 예루살렘 여인들은 모두 침묵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선택받기 위해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사랑받았기 때문에 선택된 존재입니다.

천국은 사랑하는 자의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은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면 신앙은 곧 짐이 되고, 사랑은 두려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이 분명해질 때,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유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 이것이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처음 자리입니다. 다른 사랑에 속지 마십시오. 다른 신랑에게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 주신 참된 신랑,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드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