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한일서 3:8)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통 중에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노력해도 반복되는 실패, 이유 없이 무너지는 관계, 결심해도 끊어지지 않는 죄의 습관, 그리고 대를 이어 나타나는 질병과 비행들 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성격 탓, 환경 탓, 혹은 유전 탓으로 정리해 버립니다. 그렇게 설명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요?
어느 집안은 유독 이혼이 반복됩니다. 할아버지는 가정을 버렸고, 아버지도 같은 길을 갔으며, 아들은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대대로 폭력과 분노가 흐릅니다. 술에 취해 손을 들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지만,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보고 자라서 그래.” “기질이 그런 거지.” “집안 내력이야.”
물론 환경과 학습, 유전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습니다. 같은 부모 아래,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들 중 왜 유독 한 사람에게만 같은 죄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왜 어떤 이는 자유로운데, 어떤 이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에 눌린 채 살아가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 5:8). 악은 무작위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틈을 찾고, 약점을 노리고, 가장 무너지기 쉬운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유 없는 만성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약을 먹으면 잠시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재발했습니다. 심리 상담을 받았고, 스트레스 관리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깊은 밤이 되면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집안은 대대로 점과 무속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고, 어머니 역시 젊은 시절 점집을 드나들며 도움을 구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고통은 단순한 육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죄와 타협했던 흔적, 하나님 아닌 다른 영적 통로를 열어두었던 그 틈이 세대를 넘어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대적 악령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띄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질병의 옷을 입고, 성격의 탈을 쓰고, 유전이라는 이름으로 숨어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의 문제를 놓치고, 육과 마음의 차원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다 지쳐버립니다.
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너무 가볍게 여깁니다. “한 번쯤은 그럴 수 있지.” “요즘 세상에 그 정도는 다 해.” 그러나 성경은 죄를 그렇게 다루지 않습니다. 죄는 반드시 문을 엽니다. 그리고 그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생각보다 집요합니다.
어느 남편의 외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가정을 무너뜨리는 영적 균열이 됩니다. 그 아내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와 분노가 남고, 그 분노는 자녀의 정서에 스며듭니다. 자녀는 사랑을 믿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고, 결국 또 다른 파괴적인 관계를 선택합니다. 죄는 그렇게 흐르고, 세대를 타고 이동하는 것입니다.
세대적 악령은 바로 이 지점을 붙듭니다. 회개되지 않은 죄, 덮어둔 상처, 정리되지 않은 과거를 근거 삼아 “내가 여기 머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흔듭니다. 이것을 ‘선택된 숙주’라고도 부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아버지의 죄악을 자녀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무자비하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가 회개되지 않을 때 그 영향력이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부모 세대가 예수를 몰랐다면, 회개의 기회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부모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대신해 회개하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 가계 가운데 있었던 죄를 제가 주 앞에 가지고 나옵니다.” “이름 모를 죄까지도 주의 보혈로 끊어 주옵소서.” 이것은 미신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의 적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슬을 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예수님은 단지 개인의 구원만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세대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됩니다. 철저한 회개, 분명한 단절, 그리고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영적으로 분별력 있는 사역자의 도움이 필요하고, 동시에 의학적·심리적 치료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영과 육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둘 다 사용하십니다.
내 삶에 반복되는 패턴은 무엇인가? 우리 가계에 유독 되풀이되는 죄나 고통은 없는가? 나는 그것을 단순히 성격이나 환경 탓으로만 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이 사슬을 여기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다음 세대로 넘길 것인지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끊고, 자유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대적 악령은 강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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