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브리서 2:1~4)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쓰인 편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었지만 여전히 오랜 세월 몸에 밴 율법적 사고와 종교적 습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에는 ‘은혜’와 ‘행위’가 섞여 있었고, ‘예수의 십자가’ 위에 자신들의 공로를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어 했습니다. 그 작은 “양념” 하나가 바로 복음을 무너뜨리는 독이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단호히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절기는 지켜야지, 십일조는 해야지”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자존심, 그것이 바로 ‘흘러 떠내려감’의 시작입니다.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제사를 드리고, 절기마다 제물을 바쳤습니다. 예루살렘은 피 냄새가 그치지 않는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피 냄새를 통해 “너희는 예수의 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피를 예수의 피로 보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제사가 자기들을 의롭게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 안에는 여전히 옛 교리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그 틈을 타고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은혜 위에 행위를 얹는”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적 신앙, 로마가톨릭의 공로주의로 흘러가게 된 뿌리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경고합니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그 떠내려감은 단순한 ‘믿음의 약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에서 행위로, 십자가에서 인간의 자존심으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용의 입에서 물을 뿜어” 성도들을 떠내려가게 만듭니다(계 12:15). 그 물은 가짜 복음입니다. 인간을 높여주고, 스스로의 의를 세우게 하는 달콤한 거짓말입니다.
“너희끼리 하나가 되어 세상을 정화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라.” 그 말이 그럴듯해 보여도, 그것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영광’을 세우는 바벨론의 외침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심지어 선한 일을 한다 해도, 그 속에는 ‘나를 위한’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 실체입니다.
히브리서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잠언에 “매를 들지 않는 자는 자식을 미워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때로는 매를 드십니다. 우리의 자존심, 스스로 세우려는 의, 인간적인 의지들을 부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나는 나를 위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때리시고, 흔드시는 그분의 손길이 바로 “떠내려가지 않게 하려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인간의 건축을 부수십니다. 전쟁과 재난, 혼란과 붕괴, 그것은 모두 “너희 스스로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난 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남습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 나의 행위와 노력, 나의 지식과 자존심이 모두 헛것이었구나.”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은혜는 비로소 빛을 냅니다. 그것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 이 말은 단순히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은혜를 단단히 붙들라’, ‘예수의 피 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하지 말라’는 외침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공로가 단 한 점도 들어갈 수 없는 순수한 은혜의 강입니다.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자는 모두 떠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아들의 피를 바라보며, 그 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자의 겸손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이자, 동시에 복음의 위로입니다.
‘흘러 떠내려감’은 단순한 신앙의 냉담이 아니라, ‘은혜 위에 인간의 공로를 더하려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흔드십니다. 그 흔듦은 떠내려가지 않게 하려는 구원의 손길입니다. 참된 신앙은 오직 예수의 피, 십자가의 은혜 위에만 세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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