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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9. 23.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브리서 1:1~2)

히브리서의 시작은 매우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예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 이 질문을 풀어갑니다.
“왜 아들인가? 왜 율법이 아니고, 왜 다시 선지자가 아니라 오직 아들을 통해서여야 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때’는 단순히 세상의 종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의 모든 시간을 가리킵니다. 십자가 사건 안에서 이미 심판이 이루어졌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종말을 살고 있습니다. 종말은 창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창조는 그냥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라, 종말과 구속의 결론을 품고 시작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통한 계시는 단순히 시대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되는 시점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는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라 소개합니다. 상속자란 단순히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과 유업을 온전히 이어받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또한 그분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창조가 종말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창조의 의미와 목적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와 종말을 잇는 다리가 바로 아들, 곧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죄를 드러내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가 말하듯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입니다(갈 3:24). 결국 율법이 드러내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너희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아들만이 온전히 율법을 이루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그림자였고, 아들은 실체입니다. 그림자에 머무르면 구원이 없지만, 아들을 붙들면 생명이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히브리인, 곧 유대인 신자들에게 쓰였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여전히 율법과 행위를 강조하며, 예수를 죽음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그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곳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대교는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고, 오히려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 안에는 유대교적 율법주의와 거짓 교사들이 침투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만으로 충분하다 선언하면 사람들은 불편해합니다. 뭔가를 더 보태고 싶어 하고, 자기 열심과 행위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거짓 복음의 씨앗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미완성이 아니라 완료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이미 완전한 장기를 갖추고 태어나듯, 성도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전한 생명을 받은 존재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완전함에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풍성하게 누려가는 과정입니다. 그 길에는 고난과 시험이 따르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점점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배워갑니다.

믿음은 내가 쌓아두는 자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흘려 보내시는 생명력입니다. 수도관처럼 계속 공급되는 것이지, 저축해두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믿음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마저도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아들을 보라. 아들을 붙들라. 아들이 전부다. 율법이 아니라 아들, 행위가 아니라 아들, 나의 열심이 아니라 아들. 그 아들 안에서 이미 모든 것이 완료되었음을 믿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뭔가를 더하려는 유혹 속에 살아갑니다. 교회는 비전을 세우고, 사람들은 열심을 자랑하며, 때로는 신앙을 개인적 취향이나 자기 신념으로 소비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아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미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행위나 열심으로 흔들리지 않고,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