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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피조세계의 덧없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7.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히브리서 1:10~12)

본문은 창조의 목적과 멸망의 의미,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하신 ‘주’이심을 드러내는 깊은 신학적 말씀입니다. 말씀의 핵심은 단순히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다”가 아니라, ‘멸망할 것을 아시면서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하늘과 땅, 곧 피조세계 전체가 결국은 낡아지고 멸망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 곧 예수 그리스도만은 변치 않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멸망할 것을 창조하셨을까요? 그것은
“멸망하지 않는 분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과 인간, 역사, 모든 존재는 결국 사라짐을 통해 오직 ‘주’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입니다. 우리는 그 ‘소품’이며, ‘설명서’입니다.

이사야 40장에서 하나님은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붐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시들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랑과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서리라”는 진리를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아를 무너뜨리십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종교적 열심으로, 자기 의로 하늘에 닿을 수 없음을 역사 속에서 증명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은 한 편의 실험이요,
‘나는 없음’임을 깨닫게 하려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왜 예수만이 주이신가”를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단순히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거입니다. 골로새서 1장 16~17절이 이를 명확히 말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은혜의 세계”입니다. 그분의 피로만 살아나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는 없음이다”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풀처럼 말려가십니다. 그분의 기운이 우리 위에 불어오면, 우리의 교만과 자존심, 종교적 위선이 말라버립니다. 이것이 고난이고, 이것이 성화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고백에 이르도록 이끄십니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원 안에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의 풍요’를 구합니다. “병 고쳐주세요, 부자 되게 해주세요,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아버지는 길가에서 “내 아들이 죽었다, 너희를 살리려고 죽었다”고 피눈물로 외치고 계신데, 우리는 여전히 세속적 욕망을 들고 그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라 불리는 현실의 비극입니다.

히브리서 1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멸망할 것을 붙들며 영원한 분을 잊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은 낡고 사라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히13:8)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없음’을 통해 ‘참된 존재’를 부여받습니다.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히 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