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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삼손, 죽음으로 들릴라를 사랑하다 - 십자가의 그림자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3.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사사기 16:30)

우리는 삼손의 죽음을 단지 비극적이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실패자의 이야기로 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자기를 내어주심으로 죄인을 살리시는 메시아의 십자가 사건을 미리 그려낸 복음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삼손이 가사 땅의 창녀를 덮은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도덕적 타락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이 이야기를 단순한 윤리의 문제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
소렉 골짜기’의 음녀 들릴라를 사랑함으로, 블레셋 한복판에서 죽음을 택합니다. 들릴라의 이름은 "연약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삼손은 스스로 연약한 자가 되어, 이방 땅에서 죽음을 감당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죄인과 하나 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삼손이 블레셋 성의 문짝을 뽑아 헤브론으로 옮겼다는 장면은 단순한 괴력 자랑이 아닙니다. ‘
’을 얻는 자가 메시아라는 창세기 22장의 언약을 상기하게 합니다. 삼손은 성읍의 문을 뽑음으로써, 그 성 전체, 곧 세상의 시스템과 권세, 거짓 종교와 음란의 바벨론을 무너뜨릴 메시아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 22:17)

가장 강력한 장면은 삼손이 성전 기둥 사이에서 두 팔을 벌려 힘을 다해 무너뜨리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십자가 위에서 두 팔을 벌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삼손은
"나도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적의 한가운데에서 죽음을 자처하며 적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죄의 성을 무너뜨리셨고, 그 죄를 짊어진 백성들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바로 승리의 순간이었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삿 16:30) 예수님의 십자가 역시 죽음의 순간에 최대의 승리를 이루신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승리였습니다.

엘리야가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물로 가득 적신 제단 위에 하늘의 불이 임하게 했던 갈멜산의 사건은 삼손 이야기와 함께 읽을 때 더욱 뚜렷해집니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불이 임하여 모든 것을 살리시는 그림. 그 불은 하나님의 심판이요 동시에 은혜의 회복이었습니다.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5~38)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블레셋은 무너졌고, 하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의 창녀된 우리를 위해, 그가 우리와 한 몸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늘의 신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느냐?” 세상의 들릴라입니까? 아니면 나를 사랑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삼손은 ‘
사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들릴라처럼 음녀된 우리와 한 몸이 되셨습니다. 그는 우리 안의 블레셋과 바벨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를 바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대적의 문을 뽑아내고 하늘 헤브론에 그 문을 세우셨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승리자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삼손의 이야기 속에서
죽음으로 사랑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
들릴라” 같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들릴라 같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