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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길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9.

어느 날 오후, 한 중년 남자가 회사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방금 전 회의실에서 나왔습니다. 부하 직원이 실수를 했고, 그는 여러 사람 앞에서 그를 몰아붙였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졌고, 얼굴이 붉어졌고, 말이 날카로워졌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가슴 한편이 이상하게 불편했습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정말 나인가?'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내면에 두 가지 층위가 존재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
'라고 착각하는 에고(ego)의 층위이고, 다른 하나는 에고 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는 본래의 자아입니다. 에고는 생존을 위해 진화한 정신의 방어기제입니다. 비교하고, 판단하고, 경쟁하고, 두려워하고, 분노합니다. 에고는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더 가져야 해. 더 인정받아야 해. 저 사람보다 앞서야 해." 에고가 지배하는 삶 속에서 인간은 늘 산란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손에 쥐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연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이 급격히 줄어든다고 합니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에고가 우리에게 심어 놓은 가장 집요한 거짓말 중 하나입니다. 회사 화장실 거울 앞에 선 그 남자도, 사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좋은 직장, 넓은 아파트, 두 아이, 그런데 왜 그토록 자주 화가 났고, 왜 그토록 자주 불안했을까요?

선불교에는 '
본래면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본래의 얼굴, 세상의 때가 묻기 전, 비교와 욕망이 들어서기 전의 순수한 의식입니다. 이것은 어떤 신비롭고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봄 햇살 아래서 눈을 깜박이며 미소 짓는 순간, 노인이 오래된 정원에 홀로 앉아 새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가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까르르 웃던 순간, 그 순간들 속에 본래의 나가 있었습니다. 비교도 없고, 판단도 없고, 불안도 없었던 그 투명한 의식, 문제는, 우리가 자라면서 그 의식 위에 층층이 껍데기를 쌓아 올린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경쟁을 배우고, 사회에서 체면을 배우고, 관계에서 상처를 배웁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껍데기 속에서, 본래의 나는 가려집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덮여 있을 뿐입니다.

마음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거창한 깨달음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매우 소박한 일상의 연습 속에서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이른 아침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그것을 경험합니다. 뜨거운 물이 손등을 타고 흐르는 감각, 비눗물 거품이 피어오르는 모양, 그릇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아무런 생각도 얹지 않고 그저 그 감각들에 머물 때, 문득 가슴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퇴근길 공원 벤치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다가 그것을 경험합니다.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오늘 하루의 분노도, 내일의 걱정도 잠시 사라지고, 그저 '
여기 있음'의 고요함만이 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산길을 혼자 걷다가 그것을 경험합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흙길을 밟는 발바닥의 감촉, 숲 속의 냄새, 그 안에서 판단하는 마음이 멈추고, 비교하는 마음이 쉬고, 그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앞서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던 그 중년 남자는, 몇 달 후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어느 일요일 오후, 아무 계획도 없이 집 근처 저수지를 혼자 걸었습니다. 이어폰도 꽂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주머니에 넣어 두었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갔고, 갈대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그는 멈춰 서서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올라왔습니다. 기쁘다고 할 수도 없고, 슬프다고 할 수도 없는, 그냥 '
충만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더 가질 것도 없고, 더 이룰 것도 없고, 증명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여기,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것이 본래의 나가 내미는 손이었습니다.

본래의 나는 우리가 어딘가에서 찾아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늘 있었습니다. 다만 에고의 소음에 가려서 들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마치 구름이 아무리 두껍게 끼어도 그 위에서 태양은 변함없이 빛나듯이, 두려움과 분노와 욕망의 구름이 아무리 짙어도 본래의 나는 그 안에서 꺼지지 않은 채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것을 덮고 있는 층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작업입니다. 비교를 내려놓고, 판단을 내려놓고, 두려움을 내려놓을 때, 그 아래서 늘 그 자리에 있던 본래의 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본래 행복한 존재입니다. 불행은 본래의 나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그것이 덮여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데서 옵니다. 회사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던 그 남자처럼, 우리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
지금 이 순간, 나는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이 시작될 때, 돌아가는 길도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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