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로마서 1:1)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그림 같다”라고 말합니다. 흥미로운 역설입니다. 그림은 모사된 허상이고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실존임에도, 우리는 실물보다 형식화된 이미지에 더 많은 의미와 안전을 부여합니다. 이 단순한 관찰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인간은 현실이 주는 불편함, 질병, 늙음, 상실, 죄의 흔적들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단단히 틀에 넣고, 보기 좋게 다듬어 ‘내 것’으로 만들려 합니다. 예배당에서 늘 같은 자리에 앉는 습관, 종교적 방식에 집착하는 태도, 또는 천국을 자기 공로로 계산하려는 마음, 이 모두가 같은 본성의 표현입니다.
이 글을 통해 그 같은 인간의 ‘형식화’를 직시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빛, 그리고 그 빛에 의해 새로워진 사람들이 다시 세상으로 ‘보내짐’의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가상 현실, 증강 현실, 미디어 아트 같은 현대적 비유는 사실 오래전부터 인간이 해 온 일을 설명할 뿐입니다. 인간은 실체의 불편함을 피하고자 자기만의 모형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안위를 찾습니다. 기억과 그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간 순간을 마음속에 이상화하면, 현실 그 순간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결국 우리는 ‘실제’보다 ‘재현’에 안주하며 살도록 타락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일까요? 복음은 우리의 가짜 세상, 우리 스스로 쌓은 안전한 성채에 빛을 비추는 사건입니다. 그 빛은 먼저 “이것은 참된 현실이 아니다”라고 선언합니다. 빛은 우리 눈의 감각을 바꾸어, 우리가 그동안 실체라 불렀던 것들의 속살, 죄와 연약함과 무능함을 드러냅니다. 부르심은 바로 그 순간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의 삶(회심)은 이 진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며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에게 빛이 임했을 때, 그가 보던 세계는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부름’은 인간의 자발성이나 업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네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니다”라는 선언입니다. 누군가가 너를 불러내지 않았다면 너는 그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부르심은 눈을 뜨게 합니다. 눈이 열린 자는 먼저 자신의 더러움과 세상의 추악함을 봅니다. 이 깨달음은 달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그 눈뜸은 동시에 은혜의 시작이며, 새 창조의 첫걸음입니다. 창조의 첫날에 빛이 어둠을 가르고 모든 존재가 의미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 안에 임한 빛은 참된 존재와 가치를 회복시킵니다.
부르심은 곧 보내심으로 이어집니다. 빛이신 예수는 우리를 어두움 가운데로 보내어 그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빛의 방식은 역설적입니다. 참된 빛은 스스로 약해지고 낮아져 어두움을 대신 경험함으로써 그것을 살립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러셨고, 그 길이 사도의 길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나열하며 그것을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심을 받은 자의 증거는 능력이 아니라 약함 가운데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빛의 자녀는 세상에서 ‘착한 행실’로 말해지지만, 그 행실은 자랑스러운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잃어가는 헌신의 연속입니다. “자기를 잃음”이 곧 그리스도 안에서 찾음의 길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현실을 회피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짜 이미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경계하십시오. 기억과 감정의 이상화가 현실의 책임을 회피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자기 주장 대신 부르심의 언어로 들어야 합니다. 내 힘과 공로를 드러내려는 충동을 내려놓고, 누가 나를 불렀는지, 누구의 영광을 드러내는지 묵상하십시오. 또한, 약함을 숨기지 않아야 합니다. 약함을 수치로 삼지 마십시오. 약함 가운데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십시오. 오히려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보냄의 자리에서 섬기십시오. 보내심은 편안한 임무가 아닙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 오해받고, 낮아지는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예수의 빛이 가장 선명히 드러납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실체를 마주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더는 그림 속 풍경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눈이 멀었던 시대의 ‘안전한 신앙’을 내려놓고, 빛의 현실, 곧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부터 흘러나오는 단 하나의 의존을 붙듭니다. 그 의존은 슬픔과 외로움으로 인한 포기가 아니라, 생명의 자리로의 초대입니다.
우리가 빛을 받은 이유는 단지 개인적 구원에 머무르기 위함이 아닙니다. 빛은 우리를 보내어 어두움에서 일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보냄의 방식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단순하고 역설적입니다. 낮아짐으로 높아짐을, 약해짐으로 강함을 드러내는 삶, 우리가 그 길을 걸을 때, 예수의 빛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부르심을 입고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참된 기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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