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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부부, 물레방아 소리에 익숙해지는 법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2.

결혼 5년 차 준호 씨는 요즘 아내와 눈만 마주쳐도 날이 섭니다. 퇴근길에 잠깐 들른 편의점에서 산 우유가 저지방이 아니라는 이유로, 설거지통에 그릇 하나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사소한 것들이 자꾸 부딪힙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준호 씨는 생각합니다. 여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버겁고, 버거운 만큼 마음은 좁아지고, 좁아진 마음은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쉽게 화를 냅니다.

사실 이건 준호 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렵고 바쁜 시절을 통과하는 부부들은 대개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여유를 잃고, 여유를 잃으니 조급해지고, 조급해지니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어 단정 짓습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이 결혼, 잘못된 걸까." 오늘의 피곤함이 내일도 계속될 거라는 착각 속에서, 부부는 날카로운 말들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2400년 전 아테네에도 이런 부부가 있었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50대에 결혼해 세 아들을 두었지만, 시민을 깨우치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고 평생 돈 한 푼 받지 않고 가르치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당연히 살림은 뒷전이었고, 형편은 늘 궁핍했습니다. 그의 아내 크산티페가 남편에게 살가울 리 없었습니다.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
선생님은 사모님의 잔소리를 어떻게 견디십니까?" 소크라테스는 심드렁하게 답했습니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으면 괴로울 것이 없지." 또 이런 날도 있었습니다. 부유한 손님들을 집에 초대한 날, 크산티페는 대접할 게 없어 부끄럽다며 투덜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
염려 말아요. 이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참아줄 것이고, 시시한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어느 날은, 강론 중에 아내가 잔소리를 퍼붓다 못해 구정물까지 끼얹었을 때, 그는 태연히 말했습니다. "천둥이 친 다음엔 소나기가 오는 게 당연하지." 참다못한 제자 알키비아데스가 "사모님의 잔소리는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단련됐다네. 우물의 도르래가 늘 가랑가랑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지. 자네도 거위 우는 소리쯤은 참아낼 수 있을 거야." 제자가 지지 않고 "하지만 거위는 알도 낳고 새끼도 길러주지 않습니까"라고 받아치자,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한마디 더했습니다. "크산티페도 아이를 낳아준다네."

이 대화가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건, 그 안에 결혼생활의 진짜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내를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그 소리에 '단련'되는 쪽을 택했습니다.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상대가 달라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소리를 견뎌내는 귀를 갖는 것입니다.

몇 달 뒤, 준호 씨는 아내의 잔소리에 예전처럼 발끈하는 대신 이렇게 말해보았습니다. "
그래, 맞는 말이야. 다음엔 신경 쓸게." 놀랍게도 아내의 목소리 톤이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상대가 바뀐 게 아니라, 그가 먼저 반응하는 방식을 바꾼 것입니다. 물레방아 소리는 여전히 돌아가지만, 이제 그 소리가 그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부부의 삶은 길다면 지겹도록 길고, 짧다면 아까울 만큼 짧습니다.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힘들어 죽겠다고 혀를 차면 고달픈 인생이 되고, 그래도 한번 살아볼 만하다고 여기면 대수롭지 않은 인생이 됩니다. 단점만 찾으려 들면 끝이 없지만, 장점을 보려 하면 또 그만큼 보입니다.

중요한 건 상대의 변화를 억지로 재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깨닫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 마음에 안 드는 배우자를 참고 기다려주다 보면, 어느 순간 정작 변한 것은 내 쪽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조금 더 넓어졌기에, 행복한 동행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
조금만 더 이해해주면 된다. 조금만 더 참아주면 된다." 이 말은 손해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먼저 여유를 회복하면, 그 여유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살린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물레방아는 돌아갑니다. 그 소리에 무너질지, 그 소리 곁에서 평안할지는 결국 내가 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