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혼 3년 차인 지혜씨는 요즘 남편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사소한 다툼이 있을 때마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에도 당신이 그랬잖아", "작년 생일 때도 그냥 넘어갔으면서" 하는 말들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마음속에 작은 장부가 있어서, 남편의 실수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기록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정작 남편이 해준 좋은 일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서운했던 일은 날짜와 장소까지 선명했습니다.
이건 지혜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스턴대학교에서 3천여 명의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결혼생활에 불만족을 느끼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심장마비로 사망할 확률이 네 배나 높았습니다. 남성도 두 배 이상이었습니다. 마음에 쌓인 서운함이 단순한 감정 문제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콜레스테롤 수치를 올리고 심장을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을 붙들고 있으면, 그 기억이 오히려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셈입니다.
동해가 옆집에 놀러 갔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친구와 신나게 놀다가 딱 한 번 장난감을 빼앗겼던 그 순간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 친구가 자기 간식을 나눠줬던 수십 번의 순간은 흐릿하기만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부정성 편향"이라 부릅니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위협적이고 아픈 경험을 더 강하게 각인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원시시대라면 맹수에게 물렸던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능이 부부관계에서는 독이 됩니다. 배우자는 맹수가 아닌데도, 우리 뇌는 여전히 서운한 말 한마디를 맹수의 습격처럼 저장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은혜를 함께 주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살면서 겪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하나도 잊지 못한 채 평생 짊어지고 산다면, 그 무게에 짓눌려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잊는다는 것은 결함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선물을 거꾸로 쓰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잊어야 할 것은 붙들고, 새겨야 할 것은 흘려보냅니다.
옛말에 "원한은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상상해보십시오. 누군가 강가 모래밭에 나뭇가지로 글씨를 쓴다고 해보십시오. 파도 한 번, 물결 한 번이면 그 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반면 정으로 바위에 새긴 글씨는 수백 년이 지나도 남아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이 두 가지 재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서운했던 일은 물 위에 쓰고, 물결이 와서 지워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반대로 배우자가 나를 위해 애썼던 순간, 고마웠던 순간은 바위에 새겨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결혼 5년 차 부부 상담을 오래 진행해온 어느 상담사의 말입니다. 그는 오래 함께 산 행복한 부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도 다투고, 서운해하고, 실망하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그 순간을 "묵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속상해하다가도 결국은 흘려보냈습니다. 반면 이혼 직전까지 간 부부들의 공통점은, 지나간 서운함을 자꾸 다시 꺼내어 곱씹었다는 것입니다. 상처는 한 번 받았지만, 그것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과정에서 상처를 열 번, 스무 번 다시 받은 셈이 됐습니다.
한 여성이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노력하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어요. 어제도 그랬습니다.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는데, 남편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가 몇 번 조르니까 갑자기 화를 냈고, 결국 큰 싸움이 되어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제가 친정에 자주 가는 게 예전부터 불만이었대요. 밤새 생각해봤는데, 저희는 안 맞는 사람들 같아요."
이 고백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부부싸움의 원인이 된 사건 자체보다, "밤새 생각해봤다"는 그 시간입니다. 서운한 순간은 잠깐이었을 텐데, 그것을 밤새 곱씹으면서 서운함은 원망으로, 원망은 "우리는 안 맞는다"는 결론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서로 다른 습관을 가지고 자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었으니 부딪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딪힘이 없는 부부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일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부딪힘 자체가 아니라, 부딪힌 후에 그 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실제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기억하고 나쁜 일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불행한 사람은 나쁜 일에 집착하며 좀처럼 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격 차이가 아니라 훈련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마치 카메라 렌즈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사진의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듯, 배우자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결혼생활 전체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오늘따라 말이 없다고 합시다. 렌즈를 "나를 무시하는구나"에 맞추면 서운함이 자랍니다. 하지만 "오늘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나 보다"에 맞추면 걱정과 배려가 자랍니다. 같은 상황, 다른 렌즈입니다. 결혼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에게 어떤 렌즈를 들이대며 평생을 함께할지 선택하는 일입니다.
행복은 먼 곳에 숨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내 곁에, 처마 밑에 이미 있는 파랑새를 못 보고 사는 것뿐입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서야 "아, 그때가 좋았지" 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삶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오늘 저녁, 배우자와 마주 앉아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요즘 내가 당신에게 고마웠던 일이 뭐였지?" 처음엔 잘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서운함을 새기는 데는 익숙했지만, 고마움을 새기는 연습은 게을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 마음의 조각가는 조금씩 바위 쪽으로 정을 옮겨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서운한 기억은 냇물에, 감사한 기억은 바위에 말입니다. 그 작은 선택이 쌓여서, 결국 어떤 부부로 늙어갈지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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