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누구나 ‘듣기 싫은 말’을 듣게 됩니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성장을 위한 조언일 수도 있지만, 순간에는 불쾌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왜 나를 그렇게 평가하지?” 하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이 말 속에 내가 배워야 할 점이 있을까?” 하며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피드백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바뀝니다.
어릴 적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역사 과제를 제출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노력이 엿보입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두 세계대전을 한 문장에 담으려 하지 말아요. 글이 너무 무거워져요.” 그 학생은 첫 문장은 좋았지만, 두 번째 문장에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칭찬보다 지적이 더 크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노력이 엿보입니다”라는 말이 비록 상투적으로 들려도, 누군가가 나를 부드럽게 돕기 위해 애쓴 흔적이 담겨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평가해야 하는 자리에도 서게 됩니다. 그럴 때 솔직함과 배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면 상처를 주고, 너무 완곡하게 말하면 진심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투적인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는 단순히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문장은 듣기엔 무난하지만,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종종 상투적인 말로 관계의 불편함을 피하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진실을 흐리게 만들고, 서로를 성장시킬 기회를 잃게 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피드백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의 평가를 불쾌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일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달려 있다.” 그의 말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말이 나를 불편하게 할 때, 먼저 그 사람의 의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나를 깎아내리려는 마음에서 말했을까요? 아니면 나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말했을까요? 모든 사람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비판을 들을 때도, 그것을 ‘공격’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로 바꾸는 힘은 내 안에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피드백을 줄 때, 그것이 어떤 의도이든 간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입니다. “이 말을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방어적인 사람에서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또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줄 때는, 진심 어린 말과 따뜻한 태도로 전해야 합니다. 사실은 명확히 말하되, 말투에서는 돕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야 합니다. 이것이 ‘정직함’과 ‘사랑’이 함께 가는 길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늘 진솔한 대화와 비판 속에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을 더 좋은 사람, 더 지혜로운 지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처럼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보세요. “이 말이 내 자존심을 건드릴 수는 있지만, 내 영혼을 자라게 할 수도 있다.” 결국 피드백은 상대가 나에게 던진 거울입니다. 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다듬어 갈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언제나 내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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