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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쉼을 잃어버린 시대, 창조를 잃어버린 인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15.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오늘날 한국 사회는
‘쉼’을 잃어버린 사회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불안해 쉬지 못합니다. 휴식은 사치로 여겨지고, 잠시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놀아도 쉬지 못하는 시대, 웃어도 피로한 시대입니다.

김정운 박사는 한국인은 노는 건 잘하지만 쉬는 건 못한다고 말합니다.
‘休(쉴 휴)’‘사람 인(人)’‘나무 목(木)’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즉, 나무에 기대어 숨 고르듯 멈추는 것, 그것이 쉼입니다. 그리고 ‘息(쉴 식)’‘스스로 자(自)’‘마음 심(心)’이 만나, 자기 마음을 돌이켜 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휴식은 어디에 있습니까? 스마트폰을 붙잡은 채 끊임없이 자극을 소비하는 시간은 결코 진정한 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피로의 형태를 바꾸어 잠시 잊게 하는
‘기계적 방전’일 뿐입니다. 진짜 쉼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고요함 속에서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쉼이야말로 창조의 첫걸음입니다.

주체적인 삶은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답을 강요합니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각자에게 다른 길을 여십니다. 창조성은 바로 그 길 위에서 시작됩니다. 김정운 박사는 말합니다. “남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만 하지 말고, 질문의 순서를 바꿔 생각하라.” 이는 곧, 세상이 묻는 방식이 아니라 내 삶의 맥락에서 다시 묻는 용기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늘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누가 내 이웃입니까?” 묻자, 예수님은 “너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질문의 순서를 바꾸심으로, 우리의 시선과 존재의 중심을 뒤집으셨습니다. 주체적인 관점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대중이 묻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용기입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몰입할 때, 시간은 멈춥니다. 그때 우리는
‘재미’를 느끼고, 동시에 창조적이 됩니다. 칭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 상태는 인간이 가장 창조적인 순간을 설명합니다. 재미는 단순한 오락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심어주신 생명의 리듬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여섯 날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 하셨습니다. 그 쉼은 ‘멈춤’이 아니라 완성의 즐거움, 즉 흐름의 절정이었습니다. 김정운 박사는 실력이 높고 난이도가 낮으면 ‘지루함’이 오고, 실력이 부족한데 난이도가 높으면 ‘불안함’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 둘의 균형점이 바로 재미의 상태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의 깊이는 훈련과 어려움의 균형 속에서 자랍니다. 지루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곳,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현재의 순간’에서 우리는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21세기는 단순한 지식 축적의 시대가 아닙니다.
‘편집’의 시대입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정보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엮는 사람만이 진짜 창조자가 됩니다. 김정운 박사는  책을 요약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것이 중요한가?”를 스스로 기록하는 일이라고 ‘제텔카스텐(Zettelkasten)’을 언급하며 말합니다. 즉, 남의 생각 위에 자신의 메타 언어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이 말씀을 왜 주셨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그 질문이 바로 메타 언어이며, 그 위에서 신앙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랍니다.

김정운 박사는 창조적 인간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 주체적 관점으로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휩쓸리지 않는 눈입니다. 둘째,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로 경험과 기록의 깊이입니다. 셋째, 메타 언어의 발전으로 그 경험을 해석하는 사유의 언어입니다.

이는 신앙적으로도 깊은 통찰을 줍니다.
성도의 삶 또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주체성, 말씀과 삶 속에서 쌓인 은혜의 기록, 그 은혜를 다시 해석하며 고백하는 언어,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질 때, 우리의 삶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은혜의 창조가 됩니다.

AI 시대의 속도 속에서 우리는 멈추는 법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멈춤은 창조의 공간입니다. 창세기 1장의
“혼돈과 공허”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멈추어 섰을 때, 비로소 질서와 아름다움으로 변했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혼돈스럽고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직 ‘쉼’의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멈추어, 하나님 앞에 기대어 쉬어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에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하나님은 새 창조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적 삶이란 곧
‘하나님 앞에서 주체적으로 쉬는 삶’입니다. 쉼 없이 달리는 삶은 생산적일지 몰라도, 결코 창조적이지 않습니다. 진짜 창조는 멈춤에서 시작되고, 고요 속에서 완성되며, 은혜의 사유 위에서 열매 맺습니다.